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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치룬 큰일


BY 만석 2019-03-19

조용히 치룬 큰일
 
생각보다 쉽게 산소의 이장이 끝났다. 이장을 하기로 마음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던 중압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해진 일은 시간이 흐르면 이루어지기 마련이란 걸 다시 한 번 더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보람은, 장자로서의 대우를 다시 한 번 더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영감과 나의 동의가 필수였으니까. 그리고 두 아들에게 큰 경험을 쌓게 한 것도 더 큰 보람이었다.
 
고맙게도 두 아들이 휴가를 내어 이장에 동참했다. 다리를 다친 영감을 대신해서 두 아들이 할 일이 많았다. 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조부모님의 시신을 트럭에 옮겨 싣자, 아이들은 저마다 제 차로 모실 것을 제안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는, 어렸을 적 추억들을 쏟아놓았다. 늙은 내가 보기에도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과연 '좌청룡우백호'의 기상이 돋보였다. 

물론 자청해서 산소이전에 동참을 했지만, 나는 나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내 아들들은 우리 내외의 장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경험이 없이 일을 당하면 그 당황함이 클 것이로되, 미리 경험을 해 두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는 내 게획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제 이만한 일을 치루었으니 조금의 안목은 생기겠지. 두 아들이 서로 의논해서 일을 치루라는 무언의 지침임을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사실 우리는 영감이 외손이라 아래서방님이나 동서가 없다. 누구와  집안일을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 시누이만 다섯이니, 그도 모두 손아래라서 상의가 용이하지 않다. 아니 워낙 말이 없는 사람들이라  상의가 되질 않지. 다만  오라비의 한 마디를 천금으로 여기는 누이들이다. 그러니까 일의 진행에 반기를 들 위인들도 없다. 오늘 일 뿐이 아니라 예전부터 집안의 큰일은, 언제나  오라비의 주도로 이끌어진다는 뜻이다.
 
반면에 작은댁에는 세 아드님과 네 시누이가 있다. 시어머님과 시 작은어머님은 같이 배가 불러서 시 어머님은 딸만 낳으시고, 시 작은어머님은 아들을  낳는 횟수가 많았으니 시어머님의 상심이 얼마나 컸겠느냐는 말이지. 그러나 이것저것을 모두 포용하시고, 예전부터 아래윗집에 살았기 때문에, 큰일 때가 아니었어도 모두 내 식구처럼 그렇게 지냈다지. 그러니 자연스럽게 큰댁 오라비는 어른의 한 몫을 담당하게 됐겠지.
 
그 일이 윗분들에게는말할 수 없는 호사였는지는 몰라도, 아랫대의 며느리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터. 우리야 서울살이를 했으니 큰일 때만 찾아뵈었지만, 작은댁 큰 동서는 모진 시집살이를 했겠다. 허리 한 번을 옳게 펴보지 못하고 살아서일까. 그녀는 지금도 허리가 굽어 있고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아서, 나이를 내 위로 보는 이들이 많다. 가엾은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맏이라는 이유로 누려야 할 대우를 톡톡히 받으며 살았다. 그건 순전히 시어머님과 시 작은어머님의 배려가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장자를 손수 배려하기도 하셨지만, 자식들이나 동서들에게 가르침으로 대물림을 하셨으니까. 작은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지금도 무슨 일에든지 큰댁 장자의 결제가 없이 행해지는 행사는 없다.
 
그러니까 총대는 작은댁의 큰 서방님이 메고, 결제는 우리 영감이 하는 구조다. 이번의 산소이장이 아무런 문제없이 잘 치러진 것도, 작은댁 서방님의 노고가 크다. 경비도 사실은 우리 부부가 의논하기로는, 작은댁과 반분을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러나 작은댁 서방님은 남동생들 몫까지를 넣겠다 하여, 처음 생각보다 부담이 많이 적어졌다. 고마운 일이다.
 
‘잘되는 집안은 큰일에 큰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특히 작은댁 큰 서방님은 집안일에 나를 언제나 한 몫을 하게 한다. ‘여자가 무슨….’이라고 제 댁에게는 말마다 일침을 주지만, 내 뜻은 언제나 수렴하기를 주저치 않는다. 그러니 집안이 조용히 굴러갈 수밖에. 우리는 일이 끝나고 전화를 걸어서, 서로 수고했다고 치사를 주고받았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작은댁 서방님은 연신, '우리 형수님~!'을 불러댔다.
 
오늘은 나도 큰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들의 산소이전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나보다 두 살이 아래인 그녀는 내가 결혼할 때까지도 댕기머리를 하고 있었다. 논밭으로 나도시는 어머님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시누이는,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 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둘째 시누이가 살림을 맡아했으니 내게는 고마운 시누들이다.
 
“잘 모셨어요.”했더니,
“수고하셨어요.”한다. 경황이 없어서 이장에 동참을 못했으니, 이제 날 잡아서 한 번 다녀오자고 했다. 물론 시부모님을 모신 곳이니 거금(?)을 들여 꽃단장을 했지만, 시누이들의 기분 좋은 답방을 위해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가장 고급 진 꽃으로, 가장 빛이 나는 장식품으로 치장을 했다. 시누이들도 좋아하겠지?!

큰댁의 형님은 젊어서부터  이렇게 뒷짐을 진 채 어른으로 굴림했다.  모두 분주했지만 영감은 언제나 말이 없고 여유로운 상전이었다.
조용히 치룬 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