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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식(金婚式)


BY 만석 2019-03-17

금혼식(金婚式)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오늘도 하는 양이 심상치가 않다. 벌써 여러 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드디어 전화가 온다.
“골라잡으세요. 1번 크루즈여행. 2번 미국 여행. 3번 일본 여행.”
이게 무슨 소리인가.
“뭐야? 뭔데?”
막내 딸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보내고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한다.
 
“3월 21일이 엄마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이잖아요. 올해는 금혼식(金婚式)의 해네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딸아이는 방방 뛰는 음성으로 조잘거린다.
금혼식. 그렇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지가 어느 새 50년이로구먼. 그러고 보니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숱한 날들을 영화의 필름처럼 흘려보낸다. 생전에 보지도 못한 나정네를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을 하여 우여곡절(迂餘曲折)도 많았던 세월을, 그래도 용케 잘 살아왔구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결혼이었지만, 나도 그리 썩 빼어난 규수가 아니었음을 시인(是認)하건데, 영감도 어리석은 결혼을 하기는 마찬가지였겠다.
 
아무튼 사 남매를 기르며 힘든 세월을 살았지만, 이제는 모두 40줄에 들어선 녀석들을 보면 대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대견한 녀석들이 제법 어른 구실을 하느라고, 체팅방을 만들어 우리 부부의 일을 의논하고 걱정을 나눈다. 우리 부부의 금혼식 얘기도, 아마 채팅방을 이용해서 의견을 수렴(收斂)한 모양이다. 나도 금혼식을 가슴으로는 헤이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있던 참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아이들이 장(長)자를 달고 벌어먹으며 밥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으나,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직 박사과정에 있는 딸아이와 대학졸업반의 딸이 있는 큰딸아이가 그 뒷바라지가 수월하겠는가, 아이를 여덟 군데나 학원을 보낸다는 큰아들의 살림이 쉽겠는가. 또 사위는 대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스카웃을 제안 받은 지가 오래지 않으니 엄무파악이나 제대로 끝이 났겠는가. 대표님으로 기업을 키우는 녀석의 사업자금(事業資金)은 많을수록 더 더가 요구되는 실정이니, 어느 녀석의 살림이 여유롭다고 하겠느냐는 말이지.
 
‘한 속에서 나온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 했는데, 그래도 용케 제 부모의 이야기에는 서로 의견이 잘 통한다고 저들도 신기하단다. 하지만 크루즈여행도 미국여행도 일본여행도 너무 과하다. 아마 막내 딸아이가 선동을 해서 일이 추진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게 내 알량한 추측이다. 여러 날을 두고 막내 딸아이를 설득하다가 진전이 없자, 큰아들을 붙들고 사정을 털어본다.
“우리가 오래 살면 근사하게 회혼식(回婚式)을 하고, 요번에는 모여서 저녁이나 먹자.”하니,
“금혼식은 엄마가 이래라 저래라 하실 게 아녜요. 금혼식은 자식들을 앞세우지 않고, 잘 키워낸 자격이 있어야만 하고요. 이건 순전히 자식들이 해 드려야 하는 거예요.”
 
실갱이가 한창이던 때, 때를 맞춰서 이변이 생겼다. 영감이 발을 삔 게다. 금새 퉁퉁 부어 디디지를 못한다. 워낙 병원 출입을 잘 하지 않는 양반이기는 하지만, 아마 잘 됐다 싶은지 기를 쓰고 병원엘 가지 않겠다 한다. 키나 작아야 끌고라도 가질 않겠는가. 한 번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말리지를 못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황소고집’으로 별명이 붙어있다. 찜질팩을 하며 스스로 자가치료(自家治療)에 들어간다. 병원 다니다가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웬만해서는 병원엘 잘 가지 않는 위인이다.
 
막내 딸아이가 또 제안을 한다.
“그럼 ‘리마인드 웨딩’은 어때요. 그건 아빠 발이 아파도 괜찮은데요.”
케케케. 이 몰골에 ‘리마인드 웨딩’을? 그건 내가 싫다. 웃음거리 밖에 더 되겠느냐는 말이지.
“엄마도 우릴 힘들게 키우셨으니, 우리도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은 한다.”던 아이들이 할 수없이 백기를 들고 만다. 내 고집도 고집이지만 영감의 고집을 이미 잘 알걸랑. 결국 직장 다니는 두 아들과 막내딸 내외를 배려해서 토요일 저녁을 먹기로 합의를 한다.
 
진풍정(구; 진진바라).
언제나처럼 미국의 큰딸아이네 식구와 일본에 있는 작은며느리와 손주가 빠져서 섭섭하지만, 작은아들이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좋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시중을 받으며 한껏 ‘마마놀음’을 한다. 어~라. 예쁜 꽃봉투가 고은 떡케잌과 함께 놓여있다. 한 눈에 보아도 두둑하다. 크루즈여행 경비가 봉투 속에 들어 있단다. 맛있는 거 사드시란다. 허허 이런. 결국 아이들 주머니를 털었으니 이를 어째. 50주년 축하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박수를 받으며 그동안의 고생을 말끔하게 털어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한정식풀코스로 맘껏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남산팔각정을 둘러 집으로 향한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드라이브를 했던 추억담을 들어두었던 막내딸이,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한 신랑을 대신해서 운전대를 잡고 팔각정을 두른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할 그때는, 남산 드라이브 코스가 유행이었지.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집에서 한 잔 더~!를 외치며 남정네들이 즐거운 모의를 한다. 집에 들어오니 보라색 난이 탁자 위에 놓여있다. 언제 준비를 해 놓았을꼬. 난은 영감이 지독히도 좋아하는 화초다.
 
취기가 오르자 옛날 어릴 적 이야기에 꽃이 핀다. 큰아들이 말한다.
“나는 아빠 닮아서 너무 클까봐 걱정을 했더니, 태권도 때문에 키가 더 자라지 못했나 봐.” “난, 키 걱정은 하지도 않았어. 아빠가 계시니까 좀 클 줄 알았지.” 작은 키가 한(限)인 막내딸이 말한다. 그러자 큰 키의 막내아들이 말을 잇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영하고 농구를 해서 큰 거 같아.”
 
“그런데 옛날엔 엄마가 왜 그리 무서웠지? 우린 엄마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잖아. 하하하. 아빠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다니까.”
“맞아. 엄마가 안 된다 하시는 건 두 번도 조르지 못했지. 크크크.”
쳇. 어미가 무섭지 않았음 오늘 너희들이 이렇게 건재하기나 하구?!
손녀 딸아이의 첼로 연주를 감상하며 막내가 말한다.
“우리 지금 재벌 집 사람들 흉내 내는 거야? 거실에서 첼로 연주도 감상하고. 하하하.”
아무튼 얘들아~ 오늘의 금혼식 정말 고마워. 크루즈여행은 못했어도 오늘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
금혼식(金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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