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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불러요


BY 만석 2019-03-01

매를 불러요
 
며칠 전 그날은  내 시어머님 기일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에 아들이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두부를 싸들고 들어온다. 그렇지. 두부는 언제나 다루기가 조심스럽다니까.
“에미가 언제나 두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렇겠다. 두 모가 붙은 채로 적을 부쳐야 하니까. 나도 예전에 신경이 쓰였지. 도마의 한쪽을 살짝 들어 경사를 지게하고, 두부를 받아 얹어서 물기를 뺀다. 장장 50년의 노하우가 아니더라도 이건 기본상식이다.
 
그런데 내 머리가 이상하다. 지끈지끈 부풀었다가 꺼지듯 두통이 심해진다. 어제 시부모님 산소 이전 문제로 양주를 다녀온 것이 화근인 것 같다. 두통약을 먹고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난다. 벌써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일어나 몸을 끌고 나서니 설거지는 이미 깨끗하게 끝낸 뒤다. 누가 했을까. 단 두 식구인데, 내가 모르는 일이라면 영감이 부지런을 떤 게지. 요새로 기특한 짓을 곧잘 한다는 말씀이야 후후훗.
 
“라면 먹을 테야?”
돌아다보니 영감이 이미 라면을 끓여 식탁에 올려놓았구먼. 내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여기 두부가 어디로 갔어요?”대답 대신 닦달을 하듯 묻는다.
“응. 베란다에 내다 놓았지.”
잘했지? 하는 양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애 같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이런~. 커다란 양푼의 물속에서 두부가 둥둥 잠수 중이다.
“아이구. 물기를 빼야 되는데 물에다 담궈 놓았수?”
나도 모르게 목청이 커졌나 보다. 영감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우리 엄마는 그렇게 하시던데.’하는 듯 내 눈을 들여다본다.
“두부가 쉴까봐. 두부는 쉬기를 잘 한다구.”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 했으니 그만하자.
 
그러고보니 물에 담궈 놓았던 쿠쿠 밥솥도 보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잘 닦여서 이미 제자리에 들어앉아 있다. 내가 한참을 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데 밥솥을 들여다보고 아연실색을 한다. 밥솥의 군데군데가 하얗게 바래져 있다. 허~ㄹ. 철재수세미로 기운껏 빡빡 문질러 닦은 모양이다. 이를 어쩌나. 잘 해놓고도 칭찬은커녕 욕을 벌었으니 이 노릇을 어째. 아이들 같으면 종아리를 쳐도 족할 만큼 내 속이 끓지만, 돌아서서 어금니를 씹는다.   
 
도와주려다 그리 됐으니 워쪄. 잘 하려다가 그리 됐으니 인심이나 쓰는 척하고 눈을 감아야지. 그런데 허허. 이 양반을 보게나. 두부를 건져낸 커다란 양푼에, 라면을 건져먹고 난 젓가락을 풍덩 던져 넣는다. 양푼 가득히 기름이 번진다. 아~참 맘에 안 든다. 영감은 오늘따라 왜 이리 미운 짓거리만 하는 걸까. 기름기 있는 그릇을 따로 건사하라 했거늘, 꼭 꼬집어서 젓가락을 말하지 않아서 일까. 쩍하면 입맛이니 그쯤은 알아들었어야지.
 
맘에 들지 않는 눈으로 영감을 올려다본다. 영감이 다시 돌아서서 눈으로 왜냐고 묻는다.
“기름기 있는 젓가락을 그 큰 양푼 속에다 넣으면 어째요.”
영감의 심사가 편ㅎ치 않은 눈치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영감이 그윽한 눈을 하고 말한다.
“당신 요새 잔소리가 부쩍 많아진 거 알아?”
“쳇!” 내가 많이 봐 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 영감은 오늘 따라 매를 부른다. 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