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며느리의 솔직한 고백
설 명절이 되면 나는 내 시어머님 생각이 간절하다. 부족하기만 한 이 며느리를, 그래도 한 번의 나무라는 일도 없이 데리고 명절을 준비하며 얼마나 속이 썩으셨을까. 친정 부모님의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집안 살림살이를, 특히 부엌일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그 뒤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또 그 후로는 돈 잘 버는 직장인이라는 핑계로 집안일을 멀리했다.
그 뒤로 칭칭 시하 고운 데 없다는 외며느리로 살면서, 나는 죄 없는 친정어머니를 얼마나 원망을 했던고. 밥 앉히는 걸 한 번 가르치지도 않고,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자리로 시집을 보냈느냐고 말이지. 시어머님이 무짠지를 썰으라 하시니, 먹어 보지도 못한 무짠지를 어떤 모양으로 썰어야할 지를 모르고 쩔쩔매었으니, 시어머니 속은 또 얼마나 터지셨을까.
그래서일까. 어머님과 나는 유독 설 명절에 대한 추억이 많다. 오늘도 솥전에 눌러 붙은 떡국을 내 저녁거리로 데우며 시어머님 생각을 한다. 내 며느님이 아무리 뒷설거지로 행주까지 삶아서 널고 내일 아침거리 쌀까지 닦아 놓고 내려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가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또 있다. 오늘 저녁엔 눌러 붙은 떡국을 처리해야겠는 걸.
작은 불을 켜고 솥을 올려놓자, 언제나처럼 시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에미야. 그 부른 떡국은 날 다오. 난 그게 좋아.”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물컹물컹 다 풀어진 떡점이 좋으실 리가 없지. 워낙 알뜰하신 양반이라서 내가 버릴까봐 그러시나 보다 했다.
“아뇨. 제가 먹어요. 제가 먹는다고요. 버리지 않아요.”
그러나 어머님은 한사코 떡국을 담은 그릇을 빼앗아가셨다.
“내가 먹을 거야. 내가 좋아서 그런다니까.”
어머님은 정말 맛이 좋은 양 두 손으로 대접을 감아쥐고 뺏길 새라 자셨다. 이제는 의례 어머님 몫으로 정해져 있었고, 이 일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어졌다.
오늘 나도 내 며느리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떡국을, 대접에 담아 식탁에 앉아서 저녁으로 때울 참이다. 부실한 치아로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아. 그러셨구나.’ 어머님도 그 부실한 치아 때문에 불은 떡국을 좋아하셨구나.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미련한가. 내가 겪어봐야만 아는 멍텅구리로구먼. 내 일찍이 내 미련을 알아채리기는 했으나 , 새삼 내 미련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나는 내 며느리를 웬만해서는 나무라지 않는다. 나 같은 며느리도 곱게만 봐주셨던 시어머님도 계셨는데 말이지. 혹여 내 며느님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늘 ‘나보다 낫다.’라고 자책한다. 이건 정말이지 솔직한 고백이다. 이제 결혼 10년차의 내 며느님이고 보니 사실 나무랄 일도 없다. 오늘도 삶아 널어놓은 행주를 걷으며 내게 물어본다.
나는 내 시어머님의 행주를 몇 번이나 삶아서 널어보았는가. 나는 내 시어머님의 부엌에서 내일 아침거리의 쌀을 몇 번이나 닦아놓고 나왔었는가. 이제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생각하며 뒤늦은 자책을 하지만 무슨 소용이람. 오늘도 야무진 내 며느리의 뒷설거지를 돌아보며, 미련한 며느리의 솔직한 고백을 내 가슴 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