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변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여덟시 통근 길에 대머리총각…”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자판(字板)을 두드리는데, 안방에서 영감의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
원래 노래를 좋아한다거나 잘 부르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감은 대단한 음치다. 본인도 아는지, 평소에 흥얼거리지를 않는다. 아니, 아예 음악 프로를 즐겨 보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판관 포청천’이나 ‘프로레슬링’을 즐기며 내게 핀찬을 듣기가 일쑤다. 그럴라 치면 바둑이나 장기를 찾아보는 게 고작이기도 하지.
그러던 사람이 노래를 불러?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살며시 거실을 지나 안방 문에 귀를 기울여보면 틀림없는 영감의 목소리다. 문을 열어보고도 싶으나 아서라. 비틀었던 손잡이를 살며시 원위치. 오랜만의 흥을 공연스레 끊을 게 뭐람. 놔두자.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도 흘러나오지 못하던 가락이질 않는가. 음. 차라리 잘 됐다 싶기도 하다. 늙으면 변한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이젠 영감도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마누라는 매일 책상에나 앉아 있고 밥 때나 되어야 일어서니, 영감은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말이지. 남들처럼 술친구가 있기를 하나 이사를 했으니 동네 친구가 있기를 하나. 책이나 들여다보던 사람이 제풀에 실증이 나서 흘러간 가락이라도 흥얼거리니, 음치의 기교도 재주라면 재주라고 하겠구먼.
갑자기 주방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판을 닫고 일어나 문을 연다. 영감이다.
“뭘 해요?”
“내일 금요일이잖아. 재활용쓰레기 가져가는 날인데.”
그러고 보니 영감의 손에 쓰레기통이 들려져 있다. 그렇구나. 나는 날짜 가는 것도 몰랐네.
사람이 변해도 어찌 이리 변할 수 있느냐는 말이지. 대기업은 아니었어도, 그래도 사장님 소리를 듣던 오너가 아니었나. 그래서 영감은 지금도 은행에서 돈을 찾을 줄도 모른다. 카드를 쓸 줄도 모른다. 이 모든 걸 아랫사람의 손에 맡겼던 사람이라, 지금도 은행 출입은 나와 동행을 해야만 처리가 가능하다. 그랬던 양반이 집에 들어앉으니 이렇게 변해 있다.
물론 몇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영감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누구라도 오면 영감은 화들짝 놀라 ‘얼음 땡’이 된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부동(不動)의 자세가 된다. 재주도 좋게 의식적으로 옛날의 영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지인들은 영감의 변화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한다. 아마 배우를 했으면 대종상을 열 번은 수상했을 걸?
허긴, 나도 영감의 뜻을 잘 맞추어 주긴 한다. 영감이 옛날로 돌아가면, 나도 옛날의 조신한 어부인(?)으로 돌아간다. 영감의 뜻을 지극히 잘 받들어주는 참신한 마누라가 된다는 말씀이지.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궁합이 참 잘 맞는 부부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을 잘 해야 평안하다는 걸 영감을 통해서 절실히 느낀다.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면 사단이 나는 게다. 그래서 나는 영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백수로 지내면서 대우만 받겠다고 턱수염만 쓰다듬고 앉았으면, 그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가사를 도우며,
“밥값을 해야지.”하는 영감이 나는 늘 고맙다.
20012. 6. 조지 워싱턴의 생가 <마운튼 버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