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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내 텃밭에는


BY 만석 2018-11-26

(HerStory) <라디오 에세에펏 151회>
문학읽어주는 여자에서 제 글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2010년 작인데 다시 들으니 또 다른 감회가 있어서 올려봅니다^^

시방 내 텃밭에서는

 
쪼로롱 초로롱♪♪~”
뻐꾹~뻐꾹~
창밖은 아직 어스름한데 어느 새 새들이 날아와 나를 깨운다. 참 부지런한 놈들이다. 다시 좀 더 잠을 청하지만 이미 잠을 떨친 내 눈은 더 초롱초롱.
 
창문을 여니 어제보다 더 푸르러 있는 내 텃밭. 어디에 새들이 날아와 앉아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그래도 반갑다고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말은 건다.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영감은 이미 일어나 앉아 있다. 서울에서는 늦잠꾸러기 마누라였걸랑.
 
내 시골은 이래서 좋다. 깨워서 일어나는 게 아니고 새들 노래소리에 눈을 뜬다는 거. 각박하고 궁핍스러운 도심보다 여유롭고 자유로워서 좋다는 말씀이야. 아직 방은 도배 전이라 군데군데 습기에 찬 얼룩이 뒤숭스럽기는 하지만 이마저 운치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작은방 마루방문을 열어 확인을 한다. 매일 나는 이렇게 하루를 연다.
 
현관문을 열자 감나무에서 아직 어린 풋감이 화들짝 놀라 곤두박직을 친다. 아침마다 이러다가 가을엔 제물에 익을 녀석들이 남아나 있으려나. 군데군데 영감이 파헤쳐놓은 마당을 까치발로 딛고 고추밭으로 내려선다. 조롱조롱 매달린 실한 고추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늦은 모종을 꽂아놓고 살아주기만을 학수고대했더니 제법 제 값을 하려는구먼.
 
고추 두 이랑에 일흔 포기를 심었으니 내 김장을 버무릴 수 있으려나? 아님 시누이들에게 나눌만큼 되려나? 고추를 수확하면 김장도 갈아야 한다는데 이왕이면 시누이들 나눠줄 배추와 무를 심을 심산이니 고추도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올해에는 늦어서 어렵겠다 하니 내년엔 반드시 고추도 나눌만큼 심어야지.
 
우와~! 고구마넝굴이  보기에 좋게 제법 어우러진다. 두어 군데 없어진 자국은 있어도 나머지 곳은 제 구실을 하려나 보다. 밑둥으로 드는 고구마니 알 수 없지만 두 이랑 가득히 제 모양새를 갖춘다. 영감은 양지 바른 곳에 고구마를 심었어야 했다고 걱정을 하지만 나는 푸르른 잎사귀만 보는 것으로도 족하다.
 
상추도 하루밤 사이에 손바닥만한 잎이 너울거리며 내 손길을 기다린다. 상추 열 포기를 심었더니 아무리 따먹어도 자리가 비질 않는다. 제 때 따먹는 연한 맛이 제법 쏠쏠하다. 남편은 촌스럽게도(?) 상추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시골 출신이 상추를 마다하니 촌스러운 거지. 뽀얀 진국을 뚝뚝 품어내는 것을 어찌 마다해.
 
오메~! 어제는 가지가 손가락만한 크기더니 아침에 들여다보니 그새 보림이 팔뚝만 하다.
가지에는 헛꽃이 없단다.”하시던 내 시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꽃마다 가지가 열린다는 말씀이셨지. 저녁에 서울 올라갈 때에는 웬만한 녀석들은 도려야겠다. 아니면 내가 없는 새에 씨가 안게 생겼는걸. 서울로 공수해서 이웃에 나눠 먹어야지.
 
푸하하~! 주렁주렁 매달린 토마토 곁을 지나니 풋 토마토의 상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군침을 돌게 한다. 곧 발간 토마토를 맛보게 되겠군. 순을 쳐야 한다는데 어설픈 농군 덕에 토마토가 내 키보다 더 커버렸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콧노래를 부르며 밭고랑을 밟다가 균형을 잃어 에구구구~. 풋 토마토 하나를 떨궜다. 아까운 거.
 
이웃의 팔촌 형님이 파를 심어보라며 어린 모종을 들고 왔다. 고마운 일이다. 영감이 밤 늦도록 꽂아놓더니 그새 기운이 성해서 꼿꼿하게 버티고 서 있다. 파에도 비료를 주는 건가? 물어서 실하게 키워 보련다. 미끈한 대파를 연상하며 벌써 껍질 벗길 생각에 신이 난다. 팔촌 형님네도 건네며 자랑을 해야 할 터인데.
 
아랫집 영미어머님이 강낭콩을 심어보라고 두어 주먹 주고 간다.
한 구덩이에 두 개씩만 심어봐요. 이모작하는 거라 늦은 가을에 먹게 될 거예요.”한다. 늦은 가을이면 어떻고 이른 겨울이면 어떠랴. 나는 그냥 심는 것으로 족하다. 나흘 만에 싹이 돋는다. 아하~! 내가 심어도 나오는구나. 같은 손으로 같은 솜씨로 꽂았는데 안 나오는 건 뭐람.
 
고구마 순을 사려고 종묘원에 갔더니 케일이 눈에 띈다. 올커니. 저게 몸에 그렇게 좋다지. 어디 나도 심어보자. 이랑의 반을 자리 잡아 케일 씨앗을 심는다. 에구우~! 한 구덩이에 너무 많은 씨앗을 넣었나? 뭉턱뭉턱 싻이 나온다. 실한 녀석 두어 개만 남기고 뽑아주란다. 나는 요새로 영감의 말을 잘 듣는 어린애가 되었다. 어깨 너머 배운 영감이지만 나보다는 낫겠지.
 
아직 자갈을 골라내지 못한 한 모퉁이에 들깨 모를 얻어다 심었더니 보기에 좋다. 어제 비료를 줬더니 그런가? 제법 퍼런 잎사귀를 붙여놓는다. 시골의 인심은 그래도 아직은 훈훈하다. 빈 곳에 꽂아보라고 이웃에서 깻모를 들어다 준다. 깻모는 자갈밭이 수분을 머금어서 더 좋댄다. 아직 노란 떡잎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며칠 지나면 비료를 좀 줘야지.
 
이렇게 내 150평 텃밭이 채워졌다. 아마 내년엔 더 푸짐한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그때는 어설픈 농군인 영감도 나도 좀은 나아지겠지. 사실 텃밭의 수확을 금전으로 따지자면 몇 푼이나 되겠는가마는 내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어 있다. 고추부자, 고구마부자, 상추부자, 가지부자, 케일부자, 파부자. 그리고 강낭콩부자, 토마토부자. 벌써 배가 부르다.
 
보림아~!
할미가 서울로 시골로 오르락내리락 힘들어 죽을 지경이여.
그려도 살아있음이 실감이 나는 생활이여라~!
 
시방 내 텃밭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