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세상에
“이거는 그냥 물수건이라고 생각하시구요. 이거는 세제 묻힌 행주라고 생각하고 쓰세요.”
딸아이가 포장된 꾸러미를 차에다 싣고 와서 무겁게 부려놓는다. 이름하여 일회용 행주란다. 그러니까 한 번 쓰고 버리는 행주라는 말씀이지. 요컨대 빨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겠다.
물론 삶을 필요도 없고 햇볕을 따라 굳이 일광욕을 시킬 필요도 없다는 말이렸다. 내 시어머님이 아시면 놀라 기절할 일이겠다. 여편네가 얼마나 게으르면 행주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느냐고. 틀림없이 혀를 찰만한 일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랬지.
막내 딸아이네 집에 가면 내 집에 없는 문명의 이기가 아주 많다. 그러나 그 중에 꼭 탐이 나는 한 가지를 대라면 걸레질을 하는 로봇이다. 물에 적신 걸레만 물려주면, 어디든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걸레질을 한다. 나도 구입을 하고 싶었지만 그 값이 거금인 모양이다.
‘ㄱ’자로도 왔다가 걸리는 게 있으면 비켜서 돌아가고, 막히는 물건이 있으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잔재주를 부린다. 뒷짐을 지고서 나도 모르게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책상 아래도 닦고 의자 밑까지도 말끔하게 문지른다. 시원찮은 나보다 훨씬 나은 로봇이다.
사실 나는 매일 방걸레질을 하지 않는다. 어지르는 사람 없고, 어린아이가 없다는 게 그 핑계다. 사흘만에도 좋고 나흘만에도 족하다. 이제는 이런 일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껄이는 걸 보면, 볼 장 다 본 늙은이 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튼 참 좋은 세상이다.
김장만 해도 그렇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기부천사가 있어서, 한 해 농사로 지은 배추를 해마다 교회로 실어온다. 김장을 담아 저렴한 가격으로 교인들에게 판매를 한다. 여성회에서는 그 기금으로 재정이 어려운 작은 교회나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준다. 이 아니 좋은 일인가.
작년부터 시골의 텃밭에 다니는 일이 힘들어서, 나도 교회의 김장을 받아먹는다. 얼마나 편한가 말이지. 깊은 밤에 절인 배추를 뒤집으러 손을 호호 불며 나가지 않아서 좋다. 새벽바람에 일어나서 찬물에 발을 적시며 절인 배추를 씻지 않아도 좋다. 마늘 손질도 할 필요가 없다.
밤늦도록 양푼 가득하게 채를 썰지 않아도 족하고, 내 맛이냐 네 맛이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족하다. 그래서 고무통도 고무 양푼도 내 집에서 쫓겨난 지가 오래다. 김장을 끝내면 연례행사로 오는 몸살도 저리 가라다. 아예 김장 걱정을 하지 않으니 내가 봐도 내 신수가 훤하다.
“권사님. 김장 가져갑니다요.” 오~라. 배달까지? 10kg씩 담은 먹음직스러운 김장이 네 자루. 주방의 김치냉장고 앞까지 공수된다. 우와~! 김장이다. 와우~! 올해에도 힘 들이지 않고 벌써 김장 다 했네. 아들네도 한 자루 딸네도 한 자루. 힘들이지 않고 기분도 좋게 선심을 쓴다.
이 좋은 세상에 오래 살자꾸나. 고생스럽던 지난날들을 추억이라 곱씹으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노라 옛이야기 하며 오래 살란다. 나이 들고 병들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이팔청춘인걸. 헉~! 내 며느님이 들으면 “어찌할꼬.” 한 걱정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