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엄마. 화요일 9시 반부터 11시까지 어때요?”
“글쎄다. 엄마가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따라 가겠냐구.”
“충분해요. 우선 초급반 입문해서 나랑 같이 해요. 내가 도와드릴께요.”
집에서 딩구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막내가, 문화회관에서 개설하는 일본어에 도전해 보라고 꼬득이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한심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계속되면 아마 우울증이나 치매가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었다.
“아무튼 가서 한 시간만 들어 봅시다. 따라 갈만한 지 못하겠는지 어디 가나 봅시다. 한 시간 참관수업을 하고 등록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으니 내일 9시 20분 수업에 들어가 봅시다.”
“아침 식사 꼭하시고 아침엔 추우니 덧옷을 입고 오세요.” 야무진 딸년의 잔소리가 늘어진다.
그러나 공지와는 다르게 왕초급반이 아니라 이미 교재 한 권을 끝내고 난 학생들의 연장 수업이었다. 오 마의 갓! 젊은 이들과 같이 시작해도 따라 가기가 힘들 게 뻔한데. 그나마 익혔던 문자들도 다 잊어버렸는데. ‘글렀구나’를 소리 없이 외치며 쳐진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옆 자리에 나란히 앉은 딸아이가 내 심각한 얼굴 표정을 읽고는,
“엄마. 내가 있잖우. 내가 석 달은 엄마 곁에 붙어 앉아서 도와 드릴게요.”
“보아하니 그 학생들도 몇몇 소리 높은 사람들 빼고는 겨우 읽는 정도의 수준이던 걸요.”
“나도 엄마랑 같이 등록해서 엄마도 그만큼 할 수 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일 주일에 서너 번씩 만나서 스터디하자구요.” 딸아이의 이런 선심을 마다하면 머지않아 크게 후회를 하지 싶었다. 그녀는 왕년에 잘 나가던 일본어 강사님 이셨걸랑.
생각해 보니 딸아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 싶다. 많이 앓고 난 그녀도 이젠 일어나 움직일 기회를 가져야 할 것 같다. 너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건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활활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켤 ‘워밍 엎’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미국으로부터 귀국을 한 딸 내외는, 내 집에서 직선으로 500m의 거리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가까이 살아야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뵐 수 있다는, 사위의 고마운 배려였다. 그동안 딸내외의 독립 절차가 길어서 나도 덩달아 아컴에서 긴 잠수를 할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