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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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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고 잘 생긴 오이


BY 낸시 2018-08-06

경제개발이 되기 전, 1960년대 시골에선  돈이 참 귀했다.
어찌나 돈이 귀했던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입학할 때 백명이 넘었다는데 나와 같이 졸업한 아이 수는 36명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중간에 그만 둔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도 무척 가난했는데 그 시절 내가 살던 곳에선 부자였다.
남들보다 유난히 부지런하던 부모님을  둔 덕이었다.

돈을 만들기 위해 부모님은 농사 지은 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학교가 일찍 끝나 집에 오는 길에 가끔 빈 리어카을 끌고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였다.
농사 지은 오이나 가지를 약광이라 불리던 새벽 도매시장에 내다팔고 오는 길이었다.
시오리 길을 물건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밀고 다녔을 부모님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시장에 내갈 오이나 가지를 따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었다.
도움이 되었는지 방해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내 관심사는 시장에 내갈 오이가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오이였었다.
어떤 오이가 가장 맛있을까...
아직 시장에 내가기엔 살짝 어린,  연하고 야들야들한 오이가 내가 먹고 싶은 오이였다.
모양도 길쭉하게 잘생긴 것으로 골라 따들고 먹는 내게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 이쁜 것은 키워 시장에 내다 팔게  꼬부라지고 못생긴 것으로 먹어라"
아버지가 말했다.
"거 무슨 소리. 우리가 이 고생하는 것은 자식들 잘 먹이고  입히자고 하는 짓인데...
제일 이쁘고 잘 생긴 것으로 골라 먹어라."

아이들 어릴 적,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내 앞으로 밀면서 시할머니가 말했다.
"네 새끼들이 먹다 남긴 것이니 네가 먹어라."
그 음식을 밀어내면서  말했다.
"할머니, 저는 내 새끼가 먹다 남긴 것이라도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은 싫어요."

결혼하니 남편은 나를 시녀 취급하고  자신은 왕자 노릇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런 남편에게 말했다.
"네가 왕자면 나는 공주다."
지금 우리집 빨래와 청소는 남편 담당이다.

육십이 넘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니,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다.
제일 이쁘고 잘 생긴 오이로 골라 먹으라고 가르친 아버지 덕분이었다.
살다가 간혹 주눅드는 순간,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면 힘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