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만 행복하자
“밥의 양(量)을 줄이세요.”
<당뇨전단계> 처방을 내리며 의사는 묻지도 않는 말에 이렇게 이른다.
“밥을 줄이고 단백질 반찬을 많이 드세요. 등 푸른 생선이나 채소로 배를 채우세요.”
“밥 많이 안 먹는 편인데요….” 그래도 밥을 줄이란다. 손에 든 밥그릇을 빼앗기는 기분이다. 무척 서운하다. 차라리 반찬을 줄이라 하지.
노화를 방지하고 동맥경화의 예방에 좋다는 현미. 고혈압과 당뇨에 좋다는 늘보리. 현미와 찰떡궁합으로 포만감을 준다는 율무. 골다공증예방에, 그리고 체력증진에 좋다 하는 녹두. 몸속의 수기돌기에 좋고 각종 염증을 제거한다는 팥. 암을 예방하고 혈액순환에 좋다는 서리태. 면역력을 증진하며 치매예방에 좋고 눈의 건강에 한 몫을 한다는 아로니아. 내가 요즘 즐겁게 지어 먹고 있는 칠곡혼합식이다. 어느 한 가지인들 소홀히 할 수가 없는 나만의 건강식이다.
각각의 효과가 아니더라도 먹으면 건강해지는 만족감. 그래도 밥을 줄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지. 영양을 따지지 않더라도, 구수하고 고소하고 상큼한 맛을 알기나 하느냐는 말씀이야. 반찬이 별스럽지 않아도 씹을 사이도 없이 꿀꺽꿀꺽 넘어나는 맛을. 한 숟가락의 밥을 30번씩 씹어라, 50번씩 씹어라 하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했나? 소위 의사라는 사람이 말이야. 그래도 주치의 말쌈이니 어디 그래 보지, 뭐.
다음 날 주발에 밥을 푸면서 주걱으로 밥을 꾹꾹 눌러서 담는다.
“2/3공기만 먹으라 했겠다. 이 정도면 되려나?” 그래도 아쉽다. 늘 먹던 양이 있는데…. 다시 주걱을 들어서 꾹꾹 누르고 밥을 더 퍼 담는다. 푸하하. 이만하면 2/3공기 맞지? 아마 풀어놓으면 한 공기도 넘을 만하다. 속도 모르면서 영감이 말한다.
“밥을 왜 그렇게 조금 펐어?”
한때는 밥맛이 없어서 밥숟가락을 들고 염불을 하던 때도 있었지 않았던가. 무엇을 먹어도 밥이 넘어가지를 않아 입안에서 밥을 굴리던 때도 있었지. 그런데 이젠 때가 되기 전에 시장기가 발동을 하니 무슨 조화 속인고. 속이 허해서라고 고기를 먹어 보란다. 그런가? 뱃속에 거러지가 들어있는 게 아니고? 고기? 먹어보지, 뭐.
그러나 고기를 먹어도 밥은 밥이다. 역시 주걱으로 꾹꾹 눌러 푼 내 밥만 하냐구.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구아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일이다. 나는 젊었을 때의 그 체중을 50년 동안 유지한다. 것도 복이라나? 작아져서 못 입는 옷이 없으니 복은 복이겠다. 이제 이 나이에 더 건강해지자 추구한다면 욕심이다. 이대로의 건강만 유지하면 족하다. 벌써 아이들이 늙어가고 있다며 흰머리를 걱정하는데, 나만 더 건강해지자 하면 정말 큰 욕심이지. 이대로만 행복하자. 아이들에게 걱정 시키지 말고 사는 날까지 이대로만 유지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