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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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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BY 만석 2018-03-28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큰딸의 둘째딸이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왔다. 다른 나라보다 제가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 좀 더 잘 알아보고 싶어서라 한다. 신통하다. 대학의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사흘 동안 내 집에 짐을 풀었다. 사흘 상관에 비행기 요금이 거의 1/3이 다운 된다고 SOS를 타진해 왔었다. 당연히 OK하고는 공항에서 재회를 하고 내 집으로 데려왔다.

 

대학3학년. 이젠 어엿한 숙녀다. 그래서 공항의 출구에서 아직 앳띤 여대생을 찾다가 그만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6개월을 지낼 짐이 우~. 장난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니 두 계절을 지낼 옷이며 살림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울 코트며 부스까지 챙겼으니. 아가씨이다 보니 자질구레한 게 많다. 그래도 110볼트 전자제품은 가져오지 못해서 구입을 해야 한단다.

 

집안이 환해졌다. 한 식구가 늘었는데 이렇게 분위가 다르다.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방 하나를 내 주고 내 잠자리를 옮겼다.

할머니~!” “할머니~!” 여전히 목소리는 막내티를 벗지 못했구먼.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예쁘다. 참 예쁘다. 이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다. 나도 손녀가 있다는 말이지.

 

우리는 이 아이를 예전부터 여우라고 부른다. 어려서부터 하는 짓이 여우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쉬운 소리를 하려면 표정이 먼저 바뀌고,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린다. 가당치도 않은 미래를 약속하기도 한다. 어림도 없는 큰 소리를 치며 사람을 놀래키지만 그게 그렇게 미웁지가 않다는 말씀이야.

 

예를 들어,

내가 억망장자가 된다면 할머니 예쁜 자동차를 사 드릴거예요.”한다든가. ㅎㅎㅎ.

내가 영국의 해리왕자랑 결혼을 하면 할머니 버킹검 구경시켜드릴게요.” ㅋㅋㅋ.

아빠가 늙어도 나는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내가 수발을 할 거예요.”

발상이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지.

 

반면에 큰 손녀 딸아이는 말한다.

불가능한 약속을 왜 해!” “나는 그렇게 허망한 꿈은 안 꿔요!”

가능치 않더라도 듣기에 라도, 기분이라도 좋게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둘째의 발상이 더 돋보이는구먼. 실제로 그래서 여우는 제 아비에게 용돈을 더 잘 얻어 쓰는 것 같다.

 

나흘만에 짐을 다시 챙겨서 기숙사로 데려다주니 집이 다시 횅하다. 다시 빈집이 됐다.

미국에 사는 큰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스웨덴 보냈을 때보다, 요번에는 엄마가 계셔서 든든해요

이런! 나도 궁금해서 노심초사인데. 내가 뭘 해 주는 게 있다고.

 

밥은 잘 먹니?”

문자를 보내니,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쪘어요.”답이 온다.

밤에 너무 늦게 다니지 말아라.” 이래저래 제 에미 곁이 아니니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기우다. 여우는 각국에서 모여든 교환학생들과 어울려서 주말이 되어도 얼굴을 얻어 보기가 힘들다.

지난 주말에는 팻숀 쇼다녀왔어요.” “그전 주말엔 민속촌 다녀왔어요.”

티켓이 생겨서 불후의 명곡녹화장에 다녀왔어요.”

 참 좋다. 여우야, 튼튼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