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큰딸의 둘째딸이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왔다. 다른 나라보다 제가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 좀 더 잘 알아보고 싶어서라 한다. 신통하다. 대학의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사흘 동안 내 집에 짐을 풀었다. 사흘 상관에 비행기 요금이 거의 1/3이 다운 된다고 SOS를 타진해 왔었다. 당연히 OK하고는 공항에서 재회를 하고 내 집으로 데려왔다.
대학3학년. 이젠 어엿한 숙녀다. 그래서 공항의 출구에서 아직 앳띤 여대생을 찾다가 그만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6개월을 지낼 짐이 우~와. 장난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니 두 계절을 지낼 옷이며 살림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울 코트며 부스까지 챙겼으니…. 아가씨이다 보니 자질구레한 게 많다. 그래도 110볼트 전자제품은 가져오지 못해서 구입을 해야 한단다.
집안이 환해졌다. 한 식구가 늘었는데 이렇게 분위가 다르다.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방 하나를 내 주고 내 잠자리를 옮겼다.
“할머니~!” “할머니~!” 여전히 목소리는 막내티를 벗지 못했구먼.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예쁘다. 참 예쁘다. 이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다. 나도 손녀가 있다는 말이지.
우리는 이 아이를 예전부터 ‘여우’라고 부른다. 어려서부터 하는 짓이 여우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쉬운 소리를 하려면 표정이 먼저 바뀌고,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린다. 가당치도 않은 미래를 약속하기도 한다. 어림도 없는 큰 소리를 치며 사람을 놀래키지만 그게 그렇게 미웁지가 않다는 말씀이야.
예를 들어,
“내가 억망장자가 된다면 할머니 예쁜 자동차를 사 드릴거예요.”한다든가. ㅎㅎㅎ.
“내가 영국의 해리왕자랑 결혼을 하면 할머니 버킹검 구경시켜드릴게요.” ㅋㅋㅋ.
“아빠가 늙어도 나는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내가 수발을 할 거예요.”
발상이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지.
반면에 큰 손녀 딸아이는 말한다.
“불가능한 약속을 왜 해!” “나는 그렇게 허망한 꿈은 안 꿔요!”
가능치 않더라도 듣기에 라도, 기분이라도 좋게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둘째의 발상이 더 돋보이는구먼. 실제로 그래서 여우는 제 아비에게 용돈을 더 잘 얻어 쓰는 것 같다.
나흘만에 짐을 다시 챙겨서 기숙사로 데려다주니 집이 다시 횅하다. 다시 빈집이 됐다.
미국에 사는 큰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스웨덴 보냈을 때보다, 요번에는 엄마가 계셔서 든든해요”
이런! 나도 궁금해서 노심초사인데. 내가 뭘 해 주는 게 있다고.
“밥은 잘 먹니?”
문자를 보내니,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쪘어요.”답이 온다.
“밤에 너무 늦게 다니지 말아라.” 이래저래 제 에미 곁이 아니니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기우다. 여우는 각국에서 모여든 교환학생들과 어울려서 주말이 되어도 얼굴을 얻어 보기가 힘들다.
“지난 주말에는 ‘팻숀 쇼’ 다녀왔어요.” “그전 주말엔 민속촌 다녀왔어요.”
“티켓이 생겨서 ‘불후의 명곡’ 녹화장에 다녀왔어요.”
참 좋다. 여우야, 튼튼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