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의 위로
오늘은 내 시어머님의 제일(祭日)이다. 예수쟁이(?)가 무슨 제사냐고 하겠지만, 나는 교회에 나가지만 시부모님의 제사를 모신다. 어머님은 살아생전에 말씀하셨다.
“귀신이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있는 게 분명해.”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동안 현관문을 열어놓으라고 하셨다. 혼을 불러들이는 의미라 하셨다.
늘 기운이 없다고 하시다가도 시아버님의 제삿날에는 기운이 나서 참견을 하셨다.
“대추는 사왔냐?”
“적을 좀 두둑하게 떠 왔니?” 확인을 하고는 흡족해 하신다. 제사가 끝나고 어머님은,
“오늘 저녁엔 네 아버지가 그 좋아하는 술을 배불리 드시고 기분좋게 주무시겠다.”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은들 사자(死者)에게 무슨 소용이람. 그러고 보면 제사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위로다. 시아버님의 제사는 어머님을 위로하는 차원이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제 시부모님의 제사는 영감(아들)을 위로하자는 배려다. 시부모님께는 효부(孝婦)인척 영감에게는 열녀(烈女)인척하는 게지. 아니, ‘척’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내 앞에서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절도 하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도, 나름 핑계가 아닌 나만의 정당한 해석을 하고 있다. 내가 절을 하는 대상은 ‘신’이 아니라 부모님이다. 부모님에게 절을 하는 것을 나무라지는 않으실 게야. 우리는 일상에서 부모님께 세배도 하고, 먼 길 다녀와서는 문안의 절도 드리지 않는가. 문제 될 것이 무엇인가 말이지.
그런데 제사를 지내는 일이 너무 힘이 든다는 데에 문제는 있다. 제삿날만 돌아오면 내 며느리는 기운이 빠진다. 이제는 제법 혼자서도 제사 음식을 장만한다. 그래서 나는 카드만 건넨다. 아마 장은 어제 모두 봐다가 제 집에 부려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오가 다 됐는데도 며느리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제수(祭需)를 언제 다 장만하려는지 걱정이 됐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며느리가 두 팔이 버겁게 짐을 잔뜩 들고 끙끙거리며 들어온다.
“아니, 집에서 전을 부쳐왔니? 꼬치도 다 끼워 왔구나. 너, 간밤에 자지 못했겠구나.”
보나마나 물으나 마나 그랬겠다.
“나물만 삶으면 돼요. 어머니는 두부만 재단 해주시면 돼요.”
모르는 소리. 탕거리는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내 몫이다. 소적이며 육적은 언제 손질하누. 제기(祭器) 그릇도 꺼내어 닦아야 하고, 과일도 손질을 해야 하지 않는가. 휴~. 이렇게 두 여자는 어제부터 일상의 일은 올스톱을 하고 제사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삶고 튀기고 지지고 볶고. 제꾼 맞을 준비를 하고 밥을 앉히고…. 이제 거의 제수거리가 장만 된 것 같다.
홍동백서(紅東白西)에 조율이시(棗栗梨柿)를 가려 제사상을 차리니 젯군들이 들이닥친다. 예전에 비해 젯군이 많이 줄었다. 다섯 시누이부부 중 세 부부다. 셋째시누이는 세상을 떠났고 넷째 시누이가 청주에 사니, 우리 부부와 아들 부부를 더해서 다섯 부부다. 시아버님 제사에 만났었으니 반 년만이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고 서둘러 제를 올린다.
어제부터 아니, 며칠 전부터 우리 고부(姑婦)는 오늘의 제사에 신경을 쓰느라고 입술이 다 부르텄다. 그런데 제사의식은 체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제사상을 물리고 저녁을 챙겨 먹으니 9시가 지난다. 아직 설거지도 못 마쳤으나 손님들은 먼저 보내야 한다. 옛날 같지 않아서 이제는 집을 나서는 시누이들에게 제사음식을 싸 들려 보내지는 않는다.
서로의 수고를 치하하니 언제나처럼 큰 시누이가 봉투를 내민다.
“수고하셨어요. 조금씩 넣었어요.” 전례로 보아 서로 갹출해서 봉투를 만든 모양이다. 제사 경비를 보태겠다는 뜻이다. 마다하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이제는 의례히 받으려니 하고 받는다.
“고마워요. 에미야 네 몫이다. 받아라. 고모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시부모님의 제사니 당연한 수고지만, 며느리는 뵙지도 못한 어른들을 위해 하지 않아도 좋을 수고를 했지 않은가. 그래서 시누이들이 보태는 경비는 오로시 며느리의 몫으로 돌린다. 시누이들의 앞에서 보라는 듯이 확실하게 건넨다. 그렇다 하고 보아서 일까. 봉투를 챙기는 며느리의 표정이 한결 상기 된 듯. 아마 잠깐의 피로는 풀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