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많은 여자의 감사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영감처럼 정년퇴임을 했다던가 나처럼 평생에 하던 일을 접은 사람에겐 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 나이에 걸맞게 할 수 있는 일은 찾기가 어렵다. 젊은이들도 일거리가 없어서 걱정인데, 나 같은 늙은이까지 가세할 염치가 없다는 말이지. 그런데 살림만 하려 하니 심심하다 할 만큼 시간이 여유로우나, 무엇이라도 할라치면 버겁다. 김장도 일찌감치 해 넣었으니 몸도 마음도 너무 한가롭다. 그러나 이제는 기운도 딸리고 머리가 복잡한 일을 더는 이겨 낼 재간이 없다. 일을 벌려서 책임을 질 자신도 없다.
그런 반면 영감은 아주 좋은 취미를 살리고 있다. 화초를 가꾸는 일이다. 남은 기운을 활용하기에도 적절하고, 조용한 성미의 그이에겐 안성맞춤이다. 좋은 화초를, 값비싼 화초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곧 쓰러질 것 같은 가엾은 화초를 싱싱하게 살려내는 데에 영감은 재주가 있다. 추위에 떠는 화초는 실내의 베란다로 옮겨 주고, 거름이 모자라는 녀석들은 분갈이를 한다.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면 화초는 싱싱해 진다. 고운 꽃을 피우는 녀석들은 전지를 하기도 하고 쓸데없이 가지를 불리는 녀석은 가지치기도 해서 이웃에 나눈다.
이런 영감에게는 하나의 신조가 있다. 절대로 화초를 구입하는 법이 없다. 좋은 화초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남의 것을 탐내는 법도 없다. 다른 집에 탐이 나는 화초가 많이 있으면, 내 화초를 고운 화분에 옮겨서는 들고 간다. 그러니까 물물교환을 하는 셈이다. 자고로 화초란 서로 나누는 데에 의미가 있다나? 영감을 위해서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를 참 잘 한 것 같다. 화분을 들어다가 이곳에 놓아 보기도 하고, 저리로 옮겨 놓아 보기도 하며 매일 부산을 떤다. 변덕을 부린다고도 하겠으나 그럴 거 뭐 있나. 놀리는 기운을 어디에다 쓰랴 싶어서, 차라리 잘했다고 동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아마 내일이면 ‘군자란’이 ‘천사의 나팔’ 옆으로 이사를 할 게야.
영감은 그렇다 치고 나는 뭘하누. 하루 세끼 솥뚜껑 운전을 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사이사이에 뭘 좀 하고 싶다. 이제는 절대로 바느질을 하지 않으리라고, 재봉틀까지도 버린 게 좀 아쉽긴 하다. 재봉틀만 있으면 당장에 필요한 바느질거리가 많다. 의자카바도 만들고 싶고, 바지 단도 손을 좀 보고 싶은데 말이지. 남들처럼 살리라던 결심이 벌써 무너지고 있다. 남들 말을 빌리자면, 그 아까운 재주를 왜 썩히느냐는 말이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솜씨를 의도적으로 버리자 하니 나도 손해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수입을 위해서 바느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절대로 부자(富者)라서가 아니라, 칠순도 넘어 중반인 나이라 시력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방 수입을 위해서 바느질을 한다면 욕심이겠다. 이제는 손 벌리는 녀석들도 없고 다행스럽게 배가 고플 일도 없다. 그저 시간을 좀 활용하자는 게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만큼만 말이다. 그러나 그동안 충분히 바빴고 힘들었으니 좀 편안하게 살라고 아이들은 조언을 한다. 에미의 손을 필요로 하는 손주가 없는 것도 복이라 한다. 그러니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이야. 그러자. 이 생활에 충실하고 감사하자. 더 큰 욕심은 부리지 말자. 주어진 만큼 살면서 아이들 걱정하지 않게 건강만 챙기자. 이도 감사할 일이겠다. 이왕이면, ‘나는 복이 많은 여자’라고 자위하고 감사하며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