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 중에 하나일 뿐인데
고구마를 다듬고 있었다. 잔뿌리를 잘라내고 까만 진이 매달린 것을 제거하고, 흠집에 영겨붙은 모래와 흙도 잘라내고…. 시어머니가 내려주신 텃밭에서 캐 낸 고구마가 잘 영글어 내 겨울 내내의 잔 주전부리로는 일품이겠다.
“이 밭은 물고구마만 길러 내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서 고구마는 안 심는다.”하시던 생전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빙긋 웃었다. 고구마의 맛이 밤의 그것과 진배가 없으니 말이다. 아마 종자를 잘 선택한 탓이겠지만, 먹어도 또 먹어도 물리지 않는 건 내 식탐과도 무관하지는 않겠다.
싱크대 위로 갑자기 선지피가 낭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이런. 둔자(鈍者). 역시 나는 둔자다. 확실히 둔자다. 손가락마다 드려다 보고 나서야 내 손가락이 칼질을 당한 것을 알았다. 것도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있질 않는가.
오른쪽 두 번째로 가장 긴 검지손가락의 끝부분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는, 붉다 못해 자주색 빛깔을 내고 있었다.
“여보~! 이거….”어쩌란 말인고. 피는 내 손가락에서 발등으로 쉴 새도 없이 떨어지고 있는데.
영감이 나무라는 기색으로 뛰어오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고…. 나는 아직도 어린앤가 보다. 피는 내 손가락에서 흐르고 있는데 어쩌자고 영감을 부르느냐는 말이지. 뒷처리가 끝나고 나서야 손가락의 상처가 아려왔다.
이 후로 나는 외팔이 신세가 되었다. 내가 원래 왼손잡이긴 해도, 힘을 쓰는 외에 칼을 왼손에 잡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칼을 왼손에 잡고 있었고 상처는 오른손에 장대하게(?)나 있으니 조화로고.
아무튼 나는 이후로 오늘까지 외팔이 신세가 되었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타자(打字)를 할 수 없다는 게 치명적(致命的)이었다. 누구에게 대타(代打)를 의뢰할 만한 일도 아니거니와, 이젠 집에 그럴만한 사람도 없질 않은가.
꼼짝 없이 ‘눈 뜬 장님’신세가 되어 올라오는 글을 읽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내 글에 답을 하는 일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타자 치기가 순조롭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좀 불편해도 감수하고 글은 쓰게까지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은 굶으면서도 하는 성미걸랑.
내친김에 나는 ‘개똥철학’을 했다. 사람의 몸에 달린 것은, 하나도 불필요한 게 없다는 진리. 열 개의 손가락에서 하나를 다쳤을 뿐인데 이렇게 불편한 일상이 될 수가. 설거지도 하지 못하고 빨래도 하지 못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옛말도 부려먹을 대타가 있을 때라야지.
내 몸에 달린 어느 하나라도 귀하지 않은 건 없다. 열 개 중에 하나쯤이라도 덤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야. ‘철들자 망령 난다.’했던가. 이젠 망령도 머지않아 나게 생기질 않았는가 말이지. 내 개똥철학에 오늘따라 가을 하늘이 더 허허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