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덕에 비행기를 타고
(자꾸만 미국 다녀온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별로 할 말이 없다 해도 그래도 들려 달란다. 어디 해 보지, 뭐.)
‘딸 덕에 비행기를 탄다.’더니, 나야 말로 두 딸들 덕에 미국여행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남들도 다 누리는 행복이라 생각했더니 그도 아닌 성. 요번에는 ‘미국 여행’이라기보다는, 막내딸 내외의 미국 생활을 보기 위해서 이다. 그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마다하다가 사실은 나도 그들의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지는 척 나섰다. 이제는 사십이 넘는 나이라, 어미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궁금하던 차다.
LAX를 통해 입국하는 우리를 마중 나온 딸 내외와의 재회. 그런데 그 재회가 생각보다 낯이 설다. 와락 포응이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 ‘저 아이는 왜 저기에 서 있을까?’. ‘내 곁에 섰어야 하는 거 아닌감? 그리고 그 옆의 사위는, 딸에게서 좀 떨어진 뒤쪽에 섰어야 하는 거 아녀?‘ 아주 잠시, 그래야 그림이 제대로 인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결혼 3년차의 막내딸. 그런대도 나는 가끔은 착각을 하곤 한다. 서울 집에서도 결혼을 한 사실을 잊고 저녁이면 현관을 맴돌곤 했다. 서른여덟 해의 동거가 나를 그리 만들더니, 사실은 미국으로 보내고도 한 동안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당연히 내 곁을 떠나야 한다고 결혼을 재촉할 때는 언제이고.
마음먹고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도 몰래 눈물이 고인다. 그러지 말아야지. 사위가 혹시 서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살갑고 정이 많은 사위지만 그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가족서비스’를 받아, 우선순위로 출국대를 나섰더니, 시차로 점심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란다. 아직 내 배는 빵빵한데 말이지. 갑자기 서양식을 했다가 배탈이라도 날라 싶은지 아이들이 애써 한식식당을 찾는다.
<이가 설렁탕>. 홀에는 동양계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거의 만석이다. 이국에서 이만한 인기를 얻기가 쉬웠겠는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음이 눈에 선하다. 아무튼 장사가 잘 되어서 국위선양이 되었으면 싶다.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세요.” 미국에서 듣는 한국말과 미국에서 먹는 설렁탕 맛이 정겹다. 간혹 서양인 손님이 있기는 하나 깍두기를 보아하니 더 한국적이다.
기내에서 저녁을 먹고 금방 아침식을 해서일까. 점심으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막내딸 네 집으로 고고.
비행기 창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