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아들이 내려왔었다.
대기업처럼 일주일 주~욱 달아서 놀지는 못했지만
퐁당 퐁당 휴일이라 평일 하루만 쉬어도 주말까지 5일을 쉬게 되었다.
교대로 쉬는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뒤쪽 휴일은 가정을 이룬 사람들에게
양보했는지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주에 왔다.
그때는 어버이날이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는데 아들은 선물준비로 고민하는 듯했다.
할머니께는 내려올 때마다 했듯이 현금으로 용돈을 드리고
아빠는 저녁에 tv보는 내내 안마 막대로 발바닥을 두드리는 것을 보더니
발마사지기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엄마는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묻는다.
아서라. 발 마사지기 아빠와 같이 쓰면 되지 라고 했다.
서울서 한번 내려오려면 경비만 해도 얼마나 깨질텐데
그렇게 인심쓰다 이번달 한달을 객지에서 얼마나 쪼들리게 살지 아는데 내가 어떻게
뭘 바랄까.
이번에도 아들을 위해서 음식을 많이 준비 했었지만 휴일이 길다보니 한번쯤 외식을
하는 것도 가족 화합을 위해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집은 가족이 다함께 외식하는 경우가 참 드물다.
할머니가 외식을 싫어해서, 식성이 모두 달라서, 아빠가 늘 바빠서 등등 이유다.
그래서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아들이 밖에 나가서 회를 먹고 싶어 외식하잔다고.
모처럼 모두 찬성했고 바닷가를 드라이브하고 횟집으로 갔다.
가기전에 나는 살짝 아들에게 내 카드를 건네주었다.
받야야 할지 망설이는 아들에게
“너와 나 지금은 경제 공동체야. 이걸로 계산해라”
앗 그 유명한 말 ~경제 공동체~ 아들과 나는 함께 웃었다.
그래서 그날 아들은 할머니에게도 “아이고 우리 손자 덕분에 자알 먹었다” 인사듣고
“아빠가 계산할낀데 너 너무 무리한것 아니냐”하면서도 뿌듯해하는 아빠모습도 보고.
하지만 카드는 내꺼였다는 사실.
일년전 아들이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한달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아 왔을때다.
취업을 못했을때 취직해 돈을 벌면 뭐든 할수 있고 많이 모을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그렇지 않아 무척 난감해 했다.
객지에서 월세, 교통비, 생활비, 통신비가 고정지출로 나가지
직장 생활하니 상황에 맞는 옷도 갖춰야하고, 객지라 외로우니 친구들 자주 만나지.
가끔 집에 내려오면 경비 들어가지.
할머니 드릴 용돈 챙기고, 아빠 선물 하나 사고,
대학생인 여동생도 한푼 줘야겠고, 돈벌면 많이 드리겠다고 큰소리 쳐둔 엄마에겐 얼마나 내놔야 할지.
그야말로 부모에게 타 쓰던 학생때가 좋았지 벌어보니 돈쓸거 없다는 말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한달동안 쓸돈 외에 저축할수 있는 돈을 내게 보내주면 한푼도 안쓰고 모아 주겠다고.
그러면 엄마의 용돈은 따로 줄 필요없으니 할머니 용돈만 챙기면 된다고.
아들이 흔쾌히 동의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경제공동체가 되었다.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아들명의의 적금과 펀드를 나누어 넣고 청약도 넣고.
명절이 되면 아들의 선물이라며 삼촌, 숙모들에게 양말셋트라도 사서 돌렸다.
그럴때는 아들의 피같은 돈에서 지출하지 않고 내게 있던 상품권 등을 사용했다.
자랄 때 장손이라고 사촌동생들이 1~2만원쯤 용돈 받을때 10만원쯤 받았던 특별대우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때마다 잊지 않고 신경써주던 삼촌 숙모들을 상기시키며
작은 성의라도 표해야 하는 도리에 대해 가르쳤다.
그런점에서 아들과 나에게 경제 공동체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것인지 같이 대화 하고
월세에서 대출로 전세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이득인지 같이 계산해 보기도 하고
공모주 청약에 대해서도 같이 관심을 가져보고.
아무튼 그러다 보니 별로 살가운 성격도 아닌 아들이지만 참 통화도 자주하고 메시지대화도 자주하게 된다.
이런날들이 얼마나 오래 가랴마는 아직은 경제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