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하늘이 희뿌옇고 바람도 많이 불고 벚꽃잎이 눈꽃처럼 휘날이는 날엔
며칠전에 찾았던 쌍계사 입구의 산방에 다시 들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산방 입구에는 마가렛을 비롯한 수선화, 화살나무의 홑잎새순, 꽃잔디가 예쁘게 수를 놓고 있었고
산방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부뚜막같은 주방에 또 다른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찻잔들..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아 투박한 나무테이블 앞에 앉으니 말끔하게 생기신 여자분이 깔끔한 메뉴판을 보여주신다.
눈에 들어오는 '매화꽃 녹차'...일행중 셋은 이것을 시키고, 갱년기에 연신 부채질을 하는 다른 한 명은
시원한 오미자차를 주문한다.
갱년기에 접어든 그녀는 땀에 젖어 얇은 옷으로 중간에 갈아 입었는데도 덥다면서 부채질을 하면서
불면증까지 겹쳐 혹독한 갱년기와 전쟁을 치루고 있단다.
나에게 베개만 대면 잠을 잘 잔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라 혼자 웃어본다.
앙증맞은 차주전자 안에서 매화꽃과 녹차는 뜨거운 물을 부으니 어느새 생기도는 꽃으로 거듭나서 물기가 촉촉하다.
차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둘레둘레 구경을 하고있는데 한 명이 동으로 된 작은 주전자를 우리 테이블에 옮겨본다.
모시떡을 가져온 주인은 주전자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한 마디 하신다.
"아무데나 옮기면 안되는 물건이예요. 소중한 것이라..."
무색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얼른 옮기는 일행을 쳐다보다가,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니 깐깐함이 배어있는 얼굴이다.
고가구와 어우려져 책꽂이에 있는 한국미술사 도록을 꺼내보려다 주인에게 한마디 들을까 싶어 움직이는 손을 그만 두었다.
은은하게 우러난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큰창으로 보이는 마당을 보니 그너머에도 벚꽃 일색이다.
참 좋은 계절이구나!
모시떡을 한 입 베어무니 맛이 좋다.
모시떡 속안에 콩알이 알알이 박혀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다.
모시떡도 주인을 닮은듯하다.
땀을 어느정도 식히고 산방을 나오는데 어디서 아기 웃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빠품에 안긴 여아가 해맑은 표정으로 까르르 웃는다.
새봄과 닮은 표정으로.
문득 우리 아들 어렸을 때 광릉 수목원에 갔을 때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멜빵 청바지에 캡을 쓴 아들은 아빠가 태워주는 목마가 그리 좋았은지 연신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었지.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행복하다.
아이가 자라면 그만큼 기대치가 커지고 부모역할도 많아지고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그대로 멈춰랏! 할 수 도 없지 않은가...
아직도 바람은 불고 벚꽃잎들은 하늘로 땅으로 춤을 추며 떨어진다.
저 꽃잎들을 주워 우리집 미니테이블에 뿌려 볼까나...ㅎ
이소리를 들으면 친구가 또 한마디 할게다.
소녀같은 감정이라고...
요즘은 나이보다 젊게 사는 세상이고 신체나이도 젊은데 당연히 나의 소녀같은 감정은
아직까지 진행형이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