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전 황반변성이라는 생전 알도 듣도 못한 병을 안과에서 진단받았다.
노안인줄 알고 갑갑한 채로 생활했는데 한쪽 눈이 실명되어 가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왜 또 내게 이런 일이.. 하고 절망했었다.
처음에는 황반변성이라는 병명이 어려워 잘 외워지지도 않았다.
황반변성의 증세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나의 증세는 눈알의 뒤쪽인 망막에 필요없는 미세한 혈관이 마구 돋아나와 시신경을 누르고 지배하여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거나
일부가 보이지 않다가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술도 안되고 치료도 안되지만 다행히 혈관을 억제시키는 비 보험의 꽤 비싼 주사가 있었다.
일년 동안 두달에 한번씩 주사를 맞았다.
눈알에 주사를 맞는데 약물로 순간마취를 한다.
아프진 않지만 주사 바늘로 눈알을 찌르는 느낌, 약이 퍼지는 느낌이 모두 느켜지는 끔찍한 순간을 맞본후 일어나면
그때부터 통증이 밀려온다.
그리고 하루동안 안대를 하여 빛을 차단하고 4일간 세수를 하지 못한 추한 몰골로 살아야 한다.
어느 병원이나 병원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특히 안과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불쌍하고 이렇게 초라한 것인가를 실감하기 때문이다.
늙음은 꼭 안과를 거쳐가야 하는 과정인가
꽤 큰 안과 전문병원이라 갈때마다 2층, 3층, 4층 모두 노인들이 백명쯤 앉아
마치 역 대합실처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보호자로 따라온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배우자들이라 노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노인들이 가득한 대기실로 들어서면서 마음으로 마구 거부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나는 아니다. 나는 아직 이 많은 노인들 속에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나도 환자로서 이름이 불리워지고 주사맞을 40명의 노인들과 함께 빨간 이름표를 달고 기다린다.
옆에 앉았던 분이 나더러 "아직 젊은데 주사를 맞네"라고 했다.
<그죠?. 맞죠. 저는 아직 젊은데...나는 아닌데 >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일년정도 치료후 어느정도 진정이 된듯 하여 치료를 중단하였다.
그리고 2년만에 다시 재발한 것이다.
그 끔찍한 주사를 오늘 다시 맞았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간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소지품을 맡아줄 사람도 없어 외투와 가방을 간호사에게 맡겼다.
딸을 부르거나 남편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족이지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병원의 분위기다.
집에 올때도 택시를 타지 않았다.
쓰린 눈에 안대를 하고도 천천히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나는 이제 한눈으로도 길을 가고 차를 탈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한눈으로 살거나 남아있는 조금의 시력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달라져 많은 병명이 생겨났고 또는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모든 것은 받아 들이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쓰리고 아픈눈에 안대를 하고 한눈으로 걷다보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자꾸 바닥을 보며
걷게 된다.
아래를 보며 걷다보면 잔뜩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밟게 되고
멈추어 서서 고개를 들고 아직 잎이 많이 남은 나무를 올려다 보게 되고
그리고 하늘도 한번 본다.
다행이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
이런 것들만 볼수 있어도 괜찮다.
무심코 보아 왔던 것들을 마음을 담아 다시 보게 되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