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이가 방심하다간 개망신을 당할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같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라면 이제 반평생 조금 더 살았는데...
아직은 자식을 하나도 출가시키지 못했으니 할머니가 아닌데...
아직은 나보다 훨씬 젊은이들 속에 어울려 사회 생활하는 직장인인데...
그러나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깜빡 깜빡 잊어버리는 건망증 때문에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지만
가끔 방심하고 그냥 나갔다간 마트를 몇바퀴 돌아야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야 한다.
옷을 사러 나갔을 때도 그렇다.
생각없이 옷 구경 하다가는 헐렁하고 편한 통바지를 사게 되고, 튀지 않는 점잖은 색에
팔이 좀 긴 윗옷을 사게 된다.
이런 것은 집에 와서 입어 보면 틀림없이 칙칙하고 늙어 보인다.
바지가 젊은이들처럼 몸에 쫙 끼지는 않더라도 통이 더 좁아야겠고,
젊은이들이 끈티나 민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 여름에 제발 어두운 단색은 피했어야 했다.
방심한 거다.
음식을 먹을때는 씹을때도 조심, 삼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딱딱한 것을 과감히 먹다가는 치아가 다칠 수도 있고, 삼킬 때 호흡조절을 잘못하면 사레가 들어 낭패를 본다.
전에는 시어머니가 밥상에서 사레가 들때마다 남편이 “아무도 안 뺏어 먹어요. 천천히 잡숴요”했었는데 요즘은 남편이 더 자주 사레가 들어 내가 그 소리를 남편에게 한다.
“아이구 아무도 안 뺏어 먹어요” 라고.
며칠 전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었는데 아무소리가 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는 멘트가 나와야 하는데 내가 못 들었나 하고 다시 대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뭐지? 하고 다시 대려고 하는데 뒷 자석에 앉았던 아줌마가 큰소리로 “밑에 대야지”라고 외쳤다.
밑에 대고 자리에 앉아 가는 내내 민망스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릴 때는 환승을 하지 않으면 두어 정거장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환승을 해야지 생각을 하고 하차단말기를 찍는데 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얼른 아래에 다시 찍는데 운전기사가 큰소리로 한마디 한다.
“거 왜 탈 때부터 자꾸 그래요. 바로 안 찍고”
와따 오늘 완전 개망신이다.
20년 정도 걸어다니는 위치의 직장에 다녀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버스를 처음 탄 것도 아니고, 글자를 못 읽는 것도 아닌데...
교통카드 단말기가 아래쪽에 카드라고 적혀있는 곳에 찍어야 하지만 보통때는 걸쳐서 적당히 찍으면 찍혔는데 오늘따라 이런일이~
방심하고 대충하려다 예민한 기계에 딱 걸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망신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속상하지만 누구에게 얘기를 하고 나면 풀린다.
친구들 모임에서 상황을 이야기 했다.
모두들 배를 잡고 깔깔 웃고
“할매 다됬다”
“어디가나 아줌마들 오지랖 넓은거 알아줘야 한다. 알아서 다시 찍을건데 큰소리로 알려 주다니”
“그 기사 양반 좀 잊어주지 기억했다가 내릴때 한마디 하냐”
“훨씬 더 할매들도 잘하는데 겉보기엔 멀쩡한데 벌써 왜 저러나 해서 기억한거다”
등등의 수다로 한바탕 웃으며 시간을 보내니 그날의 망신은 에피소드로 바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