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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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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BY 길목 2016-08-18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우리집안의 가정주부 역할에 자리 잡혀 갈수록 시어머니의 자리가 애매해졌다.

내가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면 시어머니는 옆에서 빈 그릇을 씻거나 야채를 다듬거나 하면서 도와주려 했지만

나는 비좁기도 하거니와 혼자 하고 싶었다.

내가 거실에서 tv에 정신 팔려 있는데 어머니는 앞에서 왔다갔다 청소를 하신다.

할 수없이 나는 tv를 끄고 내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책을 보았다.


어느날 요가교실 끝나고 같이 요가 하는 분과 국수를 사먹고 놀다 3시쯤 들어왔다.

그 시간까지 시어머니는 점심을 드시지 않으셨다.  

혼자 드시지 왜 지금까지 안드셨냐고 하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혼자 먹기 싫어 안먹었다. 차리지 마라 안 먹을란다“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시며 밖으로 나가셨다.

미리 말하지 않고 먹고 와서 화가 나셨나?

내 목소리에 불만이 섞여 있었나?

안오면 혼자 드시면 되지 일일이 말해야 하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갈등이 스믈 스믈 연기처럼 기어 나오는 듯 했다.


그런 느낌은 시어머니도 느꼈는지 점심때 외출도 잦고 집안일을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두 사람의 상황을 교통정리 하려는 듯 참견을 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있는데 뭐하러 좁은 부엌에 어머니까지 그러고 있냐고 핀잔을 주었고

다리도 좋지 않은데, 몸도 편찮으신데 하면서 집안일을 못하시게 했다.

내 자리가 굳혀져 갈수록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에게 일을 하지 않고 편히 쉬게 해 드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람에게 일이 없어지는 무료함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일은 금방 시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심했다 덜했다 하던 퇴행성 관절염과 허리 협착증이 급격히 심해진 것이다.

남편은 하지 말라는 일을 자꾸 해서 그렇다고 툴툴 거렸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일을 하지 않으니 잊었던 통증이 살아났다는 생각을 했다.

허리협착증의 통증은 밤새 계속 되어 고통스러워했고, 돌아눕기도, 누웠다 일어나기도

힘들어 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택시를 집앞에 불러 간신히 타고 병원으로 가서 연골주사, 진통주사 물리치료를 하는데

날마다 2시간씩 걸렸다.

일주일을 그렇게 모시고 다니다보니 시어머니가 어디 어떻게 아픈지 알게 되었고,

병원에서 기다리며 그 곳을 찾는 수많은 노인들의 증세와 고통을 보고 듣게 되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혼자 아파하고 혼자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 시어머니도 마찬가지 였다.

병원에 따라 다니는 며느리에게 미안한 생각뿐인지 자꾸 혼자 다녀도 된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는 증세도 조금 호전된 것 같아서 원하는 대로 혼자 가시게 했다.

대신 체크카드를 만들어 드렸다.

혼자 가실 때 병원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원비 문자 알림으로 병세의 정도나 병원에 가는 주기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집에 사는 며느리로서 너무 무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생전 카드를 써보지 않은 시어머니는 “나는 그런거 쓸줄 모른다. 잃어버릴까도 걱정이고”하며 받지 않으려고 했다.

교통카드처럼 돈 대신 내밀기만 하면 되고 잃어버리면 문자알림이 온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사실은 박근혜가 주는 돈 만으로 병원비가 모자라긴 했었다”라고 하면서 받았다.

순간 누구? 아~

노령연금에 대한 표현이 참 직설적이라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