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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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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일기


BY 길목 2016-07-05

도시생활을 하면서 고부가 하루 종일 한집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 하듯이

편하지가 않다.

시어머니도 나도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다.

둘다 말이 별로 없다보니 서로에게 싫은 소리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고부 갈등은 없다.

그렇다고 시시콜콜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정다감한 사이도 아니다.

성격 탓도 있지만 한집에 살면서 고부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기는 어렵다.

가끔 오는 동서들이 시어머니에게 건강도 묻고 근황도 묻고 살갑게 굴듯

나도 가끔 보는 집안 어른들이나 사회에서 만난 어르신에게는 친절하게 대한다.

시골처럼 텃밭이라도 있다면 번갈아 텃밭을 가꾸며 시간을 보낼 것이고,

손주라도 일찍 보았다면 재롱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를테지만

좁은 아파트 생활에 두 사람이 나누어 할 만큼 일이 없다.

아들은 취직해서 서울로 가있고, 대학생인 딸은 학교로 가고 집에는 늘 두 고부만

덩그러니 있다.

 

우리는 집안일 하는 것도 각자 스타일이 다르다.

시어머니는 작은 일도 쉬지 않고 그때 그때 하는 편이라 늘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는 직장생활하면서 집안일은 저녁에 하거나 미뤄두었다 주말에 하던 습관이 있어

tv볼거 다보고 컴퓨터 할 거 다하고 게으름 부리다 한꺼번에 하는 편이다.


그중 제일 편치 않은 것은 하루세끼 같이 밥 먹는 시간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 먼저 챙겨 보내고 한 시간쯤 뒤에 시어머니와 내가 겸상을 해서

아침을 먹는다.

말이 별로 없는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다.

어색해서 텔레비전을 켜서 드라마를 보면서 먹으니 덜 어색하다.

시어머니는 드라마의 내용에 이해가 어려운 것을 자꾸 묻고 나는 설명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주 정확하게 아침드라마 시작하는 시간에 맞추어 상을 차린다.


금방 또 점심시간이 온다.

나는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다. 과일이나 좀 챙겨 먹고 싶은데 시어머니와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니

뭘 준비할지 고민한다.

밥은 먹기 싫고 국수를 해 먹는 게 낫겠다 싶어 국수를 준비한다.

어떤날은 계절에 맞지 않는 떡국을 끓이고, 어떤 날은 수제비를 끓여보기도 한다.

정말 먹기도 하기도 싫은 날은 아침에 끓인 국을 데워 어머니만 차려 드리고 “저는 밥 생각이 없네요” 한다.

시어머니는 같이 한술 뜨자고 하고, 속이 좋지 않느냐고도 하고, 자꾸 신경을 쓴다.

저녁밥 역시 그렇게 둘이서 텔레비전을 켜고 화면에 보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하면서 먹는다.


시어머니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어중간 할때 특히 그런 것 같다.

며느리가 없을 땐 혼자 한 숟갈 챙겨 드셨을텐데 “점심 안드셨죠?”라고 묻는 며느리가 있으니 더 불편하신지

“안 먹었지만 차리지 마라. 그냥 있다 저녁 맛있게 먹지” 라고 하신다.

그러나 저녁시간까지는 한참인데 그냥 있기는 신경이 쓰여 차려 드리면 어머니는 드신다.


시어머니는 하고 싶은 집안일을 할 자유가 없고, 나는 일을 미루어 둘 자유가 없듯이

우리는 서로 밥을 제때에 먹지 않거나 굶을 자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