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녀
이른 아침. 다른 이들에게는 ‘늦은 아침’이겠지만, 게으른 내게는 분명히 ‘이른 아침’이다.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거실로 들어서는 이. 우리 며느님이시다. 언제든지 드나들라 하고 열쇠를 맡겼더니, 문 소리도 없이 들어온 게다. 다른 날보다 많이 상기 된 표정이다. ‘무슨 일인고.’ 워낙 조용한 사람이라 바람처럼 드나드는데 말이지.
망설이지도 않고 조용조용, 그러나 따지듯 말한다.
“어제 병원 다녀오셨어요? 왜 저희들에겐 말씀을 하시지 않고.”
“….”
“병원에서 뭐라는데요? 저희한테 말씀을 하셔야지요. 우리가 고모를 통해서 들어야 하니….”
오호~라. 그거였구나. 오해를 했구먼. 호흡을 가다듬고 말한다.
“얘야. 내가 고모한테 이러구저러구 말한 것이 아니다. 걔가 미리 병원 가는 날을 메모해 놨다가, 날짜가 되면 물어본단다. 병원서 뭐라느냐구 하더냐구.”
혹시 나무라는 뜻으로 들릴라 싶어서, 며느님의 표정을 살피고 다시 입을 연다.
“그래서 답을 하는 것이지. 내가 걔들한테 먼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아니야.”
한 마디는 더 붙여야겠다.
“늙은이 병원 다녀오면 당연히 걱정스러운 이야기인데, 너희들한테까지 전화해서 걱정하게 만들 거 없잖니. 괜찮다. 늙은이는 자꾸 아파야 해. 당연한 이야기 듣고 왔는데, 뭘.”
오늘은 여느 때보다 더 이것저것을 챙긴다. 질이 좋은 원두커피도 두어 통, 대천의 구은김도 한박스, 훈제 소세지도, 훈제 오리구이도. 사서도 줄 터인데 방송국에서 상(賞)으로 또 배송해 온 것이니, 이것저것을 내놓으며 생색을 낸다. 됐다. 이만하면. 아, 하나 더 얹어줘야지.
“나, 30만원짜리 상품권도 또 약속 받아 놨다. 필요한 데 있으면 너 갖다 써라.”
환한 표정의 며느님을 배웅하고, 거실에 앉아 허리를 편다. ‘나, 시방 뭐 한 겨? 와 이리 쩔쩔맨 겨?’ ‘카톡방’에서 막내 딸아이가 소식을 전한 모양이다. 나는 얼씬도 못한다 하고, 저들만 드나들며 때때로 우리 내외의 소식을 전하며, 서로서로 우리들 일을 의논하는 모양이더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벌써 이리 짐이 되다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이들 말대로 늙고 싶어서도 아니고 아프고 싶어서도 아닌데. 지난주에 촬영한 MRI의 결과에 대해 막내 딸아이와 통화를 한 걸 며느님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한 모양이다. 좋게 생각하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것도 복이로고. 병원을 다녀오거나 말거나 무심했더라면, 난 아마 울고 말았을 걸?!
사실, 웃으며 며느님을 배웅했지만 마음은 웃는 게 아니다. 어쩌자고 병이 한꺼번에 달라붙는고. 약이 좋아서 걱정할 건 못 된다고들 하지만, 상관없이 지나가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걱정 없어요. 의술이 좋은데 뭘 걱정하세요.”라고 위로하던 아이들. 그러나 이젠,
“연세가 있으시니 어쩌시겠어요.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하며 어린애처럼 다독거린다.
크~!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아프다. 길지 않은 여생(餘生)임을 확인하며 알뜰하게 써야지. 그래도 아이들 눈엔 에미가 많이 서글퍼 보이나 보다. 것도 사랑이라 자위하자.
“왜 그러세요. 우리 엄마는 ’씩씩한 엄마‘였는데!”
아, 그랬지. 엄마는 역시, ‘용감한 엄마’이어야 해. 웃고 또 웃고 그렇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