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무엇 하나 반반히
내세울 것 없는
나는 중간을 좋아한다
모르는 것은 당연이고
아는 것도 쭈볏대며
너와 또 너의 사이에서
안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잠 잘 때만은
늘 갓 자리를 택한다
오직 내 잠 속에서 만큼은
자유롭기를 원했던가
두어평 남짓한 방에 조부모와
크고 작은 형제들 대여섯
나란히 누워잘때면
나는 늘 뒤안 문에 붙어서 잤다
달 밝은 밤엔 대나무 그림자
우수수 창호지에 놀다 가고
무화과 열매 찬바람에
쪼록쪼록 늙어가는 소리
이유도 없이 서럽기도 하고
시간도 알 수 없는
가을 밤을 뒤척이다
누군가 어둠속에서
햇고구마 먹는 소리
웃음처럼 번질 때
나는 비로서 잠이 들곤 했다
오늘처럼 가을비 지나고
차가워진 바람이 살을 넘보는 날
먼저 가신 내 아버지
얼굴 더욱 살아 오시고
날마다 늙어가시는
내 어머니 내 형제들
그립고 그리워라
꽃처럼은 다시 못 올
사람들이여 시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