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있지 주머니 속에 구겨진 지폐 몇 장 꺼내 주름진 채로 좁은 창구 속에 밀어 넣으면 벌써 친근한 손때 묻은 네모난 종이 한 장 나오지 그 종이엔 나의 행선지 적혀 있어 보고 또 보며 내가 옮겨질 곳을 한 손에 꼬옥 쥐게 되지 플랫폼엔 나와 비슷한 영혼들이 제각기 편한 자세로 서성이다 초라한 삼등 열차 진동이 전해지면 엷은 미소 짓곤 하지 그 진동은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그대로의 쉼터이기에 그곳에 한 발 내려놓으며 소소한 망각 기대하고 그곳에 또 한 발 내려놓으며 갑작스레 찾아올 인연 기대하며 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면 잡고 싶던 것들도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사라져 가지 빛바랜 의자에 기대면 누군가 남기고 간 얼룩덜룩한 사연에 익숙해질 수 있고 내가 만들었던 슬픈 흔적에 대해서도 익숙해질 수 있고 그렇게 그렇게 모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가고, 또 가고 있지
그곳에 나를 내려놓고
*출처:시집[우리는 사람이다]/ 작가: 시 쓰는 사람 단/ 출판사: 북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