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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있지


BY 시 쓰는 사람 단 2015-10-28

가고있지 


 

 

주머니 속에 구겨진 지폐 몇 장 꺼내

주름진 채로 좁은 창구 속에 밀어 넣으면

벌써 친근한 손때 묻은 네모난 종이 한 장 나오지

 

 

그 종이엔 나의 행선지 적혀 있어

보고 또 보며

내가 옮겨질 곳을 한 손에 꼬옥 쥐게 되지

 

 

플랫폼엔 나와 비슷한 영혼들이

제각기 편한 자세로 서성이다

초라한 삼등 열차 진동이 전해지면

엷은 미소 짓곤 하지

그 진동은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그대로의 쉼터이기에

 

 

그곳에 한 발 내려놓으며

소소한 망각 기대하고

그곳에 또 한 발 내려놓으며

갑작스레 찾아올 인연 기대하며

 


그곳에 나를 내려놓고

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면

잡고 싶던 것들도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사라져 가지

 

 

빛바랜 의자에 기대면

누군가 남기고 간 얼룩덜룩한 사연에

익숙해질 수 있고

내가 만들었던 슬픈 흔적에 대해서도

익숙해질 수 있고

 

 

그렇게

그렇게

모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가고, 또

가고 있지​ 

 

 

 

*출처:시집[우리는 사람이다]/ 작가: 시 쓰는 사람 단/ 출판사: 북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