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어여쁜 여고생의 하늘 문이 열리도다
이 예향
“아아아 내 마음은
조금 전도 지금도 하고픈건
못한 공부 다시 하고파
예쁘고 깨끗한 교복을 입고
학교로 발길을 돌리고 싶도다
아아아아
이 작은 꿈 어느 누가 풀어줄꼬
하고파라 학우들과 만나서 공부를“
나는 매일 이 시 노래를 내가 직접 지어서 부르기도 하며 하나님께도 늦깎이라도 공부를 할 길을 달라고 기도도하며 옛날에 학교에 다니던 생각에 사무치곤 하길 나이가 먹어 갈수록 더더욱 다시 공부를 하고픔의 생각에 잠 못 이룰 때도 많았지
나 본인은 1960년 한 농부의 건강한 딸로 태어났으나 그 건강한 몸은 며칠뿐이었고 뇌경기란 병마가 찾아와 내 몸은 일평생 한 손과 발을 장애의 몸으로 살고 뇌경을 앓아서인지 기억상실병도 있어 초.중등학교를 다닐 때도 성적은 보잘것 없는 실력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장애의 체구라 시골 동네에서 내 또래의 동무들은 나와 같이 놀아주는 애들도 하나도 없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도 나와 친하게 지내주는 학우도 없이 나는 외톨이로 그저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는 기분만으로 16살까지 학창시절을 보낸 나
1975년 중학교 3학년 봄이 와서는 이젠 내년 이 맘 때면 나도 여고생이 되겠지 하며 여고생의 큰 꿈을 꾸어가며 중학교 3학년을 다니는 한창 무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에 우리 집 식구 7명과 큰집 식구 11명 등 18명의 생계로 시골에서 나의 아빠와 백부께서는 쌀을 찧는 정미소 사업으로 양쪽 자식들 12명 공부도 해가며 생활을 했는데 그만 양쪽 식구들의 생명을 이어가던 그 방앗간이 한 밤중에 불이 나는 잿더미의 방앗간이 되었는데 불이 나던 밤에 방앗간에서는 그 다음 날이 마침 시골5일 장날이라 불이 나던 전날 쌀을 많이 찧어 마을 주민들이 다음 날 장날에 장에 가져간다고 방앗간에다 찧은 쌀을 맡겨놓아 시골엔 쌀도둑이 많아 그 쌀을 지키려고 큰 아버지께서는 방앗간 방에서 주무시다가 불이 난걸 아시고 밖으로 뛰쳐나오셔 생명을 건지셨는데 경찰관은 오더니 관리를 잘못해 불이 났다며 큰 아버지는 며칠동안 구치소 살이를 해 그 큰 아버지를 구치소에서 풀려나오게 방앗간 화재로 인한 벌금과 방앗간 새로 짓기 등등 방앗간 불이 나기 전까지는 큰 돈 걱정이 없이 두 집은 잘 지냈는데 그 방앗간 화재 후로는 집안에 물질고가 심해 나와 같은 동갑으로 같이 학교 다니던 사촌 여자애도 또한 지금은 30년전에 하늘나라로 간 나의 오빠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학에 가려는 때였는데 방앗간이 잿더미가 되어 돈이 없어 오빠는 대학을 나와 사촌 애는 고교생이 못되는 어둠의 날로 나는 1976년 1월 4일 중학교 졸업으로 학교생활은 안녕을 했지
나는 중학교 졸업 후로 장애의 체구라 취직도 못하고 그저 부모님 곁에 얹혀 밥만 먹고 노래를 매우 좋아하기에 테이프나 라디오로 노래 듣기 텔레비젼 보기 등으로 하는 일 없이 놀부로 시간을 보내며 1982년 가을에 하나뿐인 오빠가 갑자기 저승길로 가는 바람에 그 오빠를 그리워하는 맘으로 “시월에 가신 님이여”라는 거로 시(詩)를 쓰기 시작을 해 지금까지 시(詩)는 계속 쓰고 있으며 2005년 충남 부여 지체 장애인 협회에서 글쓰기 대회가 있어 참석을 해 내가 살아온 걸 쓰라했는데 그 동안은 그저 간단히 시습작만 하다가 지체 장애인 협회에서 긴 글을 써야된다고 해 처음으로 긴 수필을 쓰기를 해 최우수 대상을 받기도 해 지금도 간혹 긴 글로도 글 습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며 왜 나는 더 하고픈 공부도 다 못하고 병신 몸이라 돈조차도 못 버는 못난이로 사는 나인가로 간혹 나의 장애를 탄식도 하며 매일의 시간을 보내길 어연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다보니 40살이 넘어오는 동안 못 다한 공부라로 늘 하고픈 맘으로 하나님께 공부 할 길을 달라고 기도도 하며 내 스스로 다짐하길 내 나이 60살 회갑 되기 전이나 아니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대학교 까진 다니진 못해도 고등학교 졸업장만을 가지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하고 옛날엔 검정고시 책을 사다 공부도 해 봤고 방통고라로 가 볼까로 알아보길 하다가 나는 기독교인이라 방통고는 일요일 날 학교에 가야겠기에 안되겠구나 하며 아 나에게 못 다한 공부라로 할 길을 없을까하며 서울에서만 살았다면 장애인 학교라로 다녔을텐데 하며 학교를 사모하며 있던 중 2011년 어느 날 텔레비젼을 트니 퀴즈프로가 나오는데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가 일성여자고등학생이라시며 퀴즈문제를 푸는 걸 본 나는 아 저런 학교가 있었구나 하고 곧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일성여자고등학교를 치니 학교가 나와 확인을 하고 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도 학교에 다닐 걸 하며 며칠 후에는 학교 근처를 전철을 타고 가 보기도 하고 학교에 직접 가서 입학을 하려고 학교에 입학 신청을 하고 2011년 12월에 하던 신입생 임시교육이 매주 목요일 마다 있기에 두 달 다니는데 역시 공부에 참 즐거움이 왔고 얼른 2012년 3월 5일이 와 매일 학교로 가서 자상하신 선생님들도 좋은 학우들과도 같이 공부를 하고파라로 2012년 3월이 빨리 오길 기다리다가 2012년 3월 5일 월요일 날 드디어 나는 그렇게 원하던 고등학생이 되도다
이제야 풀린 학교공부 다시 시작을 했으니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교까지 마치리라는 다짐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 나인데 대학에 가서는 컴퓨터 공부를 해 열심히 컴퓨터지도 강사가 되어 어려운 이들에게 컴퓨터 강사로 선한 봉사자로 희생을 하며 예술가로도 활동을 하며 나의 남은 여생을 살리라로 늦깎이로 다시 시작을 한 2012년 고등학생의 시작을 한 나 이예향 학생이다
입학 날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우들과 서로서로 정답게 인사를 하며 37년만에 학생이 되는 교과서를 내 품에 가지게 되었고 좋으신 선생님들과 학우들과도 행복한 만남이 된 나에게는 하염없이 기쁘고도 즐거운 여고생의 하늘 문이 활짝 열린 2012년 3월 5일을 시 한필로 나는 노래하리라
♣ 서기 2012년 3월 5일 월요일은 ♣
나에게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늘 한이 서린 못 다한 학교 공부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고
큰 희망의 개가를 부르게 되도다
이 나의 만학의 꿈이 이루어진
영광 영광의 하늘에서는
이 기쁘고도 기쁜 서기 2012년 3월5일에
나에게 여고생이 된 하늘 문이 크게 열렸고
학교입학의 축하축하의 깃발이 휘날렸고
내 마음에 묶여있던 무거운 장애의 짐이 다 풀려나갔고
내 마음엔 하면된다는 큰 자부심의 큰 능력이 넘쳐나고
향기가 가득한 참되고 진실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
서기 2012년 3월 5일 월요일은
내가 17살의 어여쁜 소녀로 여고생이 된
배움이 열정으로 타오르는 복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