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비는
너무 느지막하고 축축해서
지루했다
날을 헤아릴
이유없는 날들이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길을 걷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피부에 감기는 알싸함이 좋아
연탄재가 뒹구는
골목 어귀에서
물탕 튀기며 하염없이
비를 맞았다
어쩌다 가끔 내리는 비는
싱겁기는 하지만
야산의 푸른잎들을
더 푸르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그것은 청춘이었기에 아름다왔고
조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비는
첼로 선율이 되어 영혼을 찾아왔다
천천히 걸어도 될 만큼
인생의 여러 고개를
넘어온 이들에겐
비는 기쁨이고, 슬픔이며 외로움이다
운명같은
인생의 그물에 걸려
진한 커피향을 마시며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마냥 바라본다
어쩌면
즐거움일 수도 있고
희망적일 수도 있지만
결코 인생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커피향속에 내리는 빗소리는
조금은 우울하고 지루하기에...
생각에 잠긴 영혼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비와함께
첼로 선율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또다시
천천히
빗줄기를 타고
흘러드는 커피향에
영혼이
젖어 들도록
내버려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