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련한 달빛이 떠 오르면
풀잎에 맺힌 이슬이
뽀얀 정강이를 휘휘 감기며 적셔드는
어느 늦여름밤 풀섶에
두고 왔던 것 같습니다
간 밤에 내린 눈
삐툴삐툴 정겹에 양옆으로 치워놓은
동네 안 골목길
그 곳에 세워두고 왔을까요
몇 안되는 집집마다
희미한 등잔불빛 새어나와
겨우겨우 발밑만 분간되는
어두운 그 곳
까만 밤에 홀로 두고 온 듯 합니다
그렇게 무심히 버려두고서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뒤돌아 볼 여유가 없었지요
사느라고...
이제
달려 갈 길보다
달려 온 길이 더 길어진 지금에야
한 고비 넘긴 구릉에 서서
흐릿한 실눈을 뜨고
버려두고 온 그 길을 더듬어봅니다
설레이네요
굳어진 마음에 틈새가 보이네요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미소가 번져오네요
그래 그랬었어...
아마 스므살도 훨씬 이전이였을거야
막 피어 오릅니다
풋풋한 풋사랑의 향기가
마구마구 번져 갑니다
희미한 그림의 물감이... 곱게
가슴에 온기 하나 품게 생겼네요
이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