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의 조문 행렬이
길게 늘어선 덕수궁 시민 분향소에서
머리 흰 할머니 한 분이 울고 계신다
할머니 혼자 나오셨어요?
그래요. 친구들 보고 함께 가자고 했더니
다들 몸 아프고 발 빼는 바람에 혼자 왔지
근데 젊은이, 내가 암만 봐도
모르는 게 있어 그러는데 말이유
저 덕수궁 돌담에 붙은 글 중에
젤 많이 나오는 이름이 조중동씨인데
노무현 대통령을 죽게 한 저 조씨가
검찰총장인감 안기부장인감
아 네. 조중동씨는요
조선 중앙 동아 신문을 말하는 거래요
원 이런 세상에!
느닷없이 할머니가 깔깔깔 소녀처럼 웃으신다
젊은이, 70년대 80년대엔 말이유
김대중씨와 학생들을 그렇게 죽이려 했거든
그때 텔레비를 보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말이유
저 나쁜 안씨가 누구냐? 고 물어서
온 식구가 깔깔깔 웃었다오
뉴스에서 맨날 안기부는, 안기부는, 하니까
우리 시어머니는 안씨로 알았던가 봐
30년이 지나도 이 나라는 똑같구먼
독재 때는 안기부씨가 의인들을 죽이더니
고생고생해서 민주화 해놓으니까 말이유
이제 착하고 의로운 이들을 조중동씨가 죽이는구먼
난 인자 도시락 싸들고 조중동 잡으러 다녀야겠구먼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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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도 그때 한 분향소에 가서
그분의 영전사진을 한참이나 보며
먹먹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지.
20대의 어느날 저녁
명동 YMCA에서 직장동료와
우연히 그분을 뵈었는데
활짝 웃으시며 인사를 건넨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난 영정사진으로 그분의 마지막 길에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