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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단보도 앞에서


BY baada 2003-12-18

쇠스랑이 마른 땅을 훑고 지나가듯

칼날같은 바람에 저무는 도시의 거리는 은밀하다

한무리의 아낙들이 베낭을 메고

행단보도 그 앞에 멈춰섰다

스텐보온병이 비죽이 뒤통수를 내밀고

원색 등산복 차림의 그녀들은

이미 환갑들은 넘겼겠거니 싶다

 

산이 따라 온 것도 아닌데

나는 산을 올려다 보듯 빤히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올곧은 한지로 걸러내어도 말갛게 고울것만 같은

한오라기 티끌도 남아있지 않을것만 같은

그녀의 삶은 어쩌면 내게 환영인지도 모르겠다

 

푸르른 산이 휘청거리는 내 산이

멀미처럼 지나가는 도시의 길 한복판에

구토를 일으키며 사라진다

한 줌도 안되는 삶의 흔적들이

질긴 나일론줄처럼 엉켜 난장같은 

초라한 내 모습이 메스꺼워 행단보도 앞에서

발갛게 깜박이는 신호등 붉은 입김속에서

구역질대신 나는 어쩌면 다 식어버려 밍밍한

보온병 속을 커피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