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손가락 펴서 나이를 셀 수 있는
작은 아이였을때
추석은
손가락 펴서 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설레임이 있었지
농협에서 나눠주는
숫자만 커다란 달력을 못에 걸어둘때도
추석에다 붉은 동그라미를 설레임의 크기만큼 그려
목 긴 기다림도 함께 걸어 두었었지
굵은 밤알 고소하게 씹히는 송편이
채반에 깐 솔잎과 함께 쪄지는 냄새도 기다려지고
옆집 순이 언니의
분칠한 뽀얀 얼굴과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도 기다려지고
도회지로 간 언니가 사다준 선물로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릴 자랑보따리도 기다려지고
누구 아들이 이번 추석때 색시감 데리고 온다며
색시감보다 먼저 도착했던 소식이 그 색시의
수줍음처럼 여겨져 또 기다려지고....
이젠 열손가락 몇 번을 펴도
모자라는 나이가 되어
분내나는 뽀얀 얼굴의
순이 언니가 되어 돌아 오고
누구 아들의 색시감이 되어
수줍은 듯 인사를 드리고
굵은 밤 고소하게 씹히는 송편을 찌는
여인이 되었지만
왜 이렇게 설레이지 않는걸까
왜 이렇게 기다려지지 않는걸까
열손가락 펴서 셀수 있는 작은 아이가 되어
열손가락펴서 다 셀수 없는설레임으로
동네 어귀를 다시 서성이며
추석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