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에 얽힌 일화>
붉은 입술 같은 홍당무 한 개
혹은 붉은 뺨 같은 당근
속살같이 맑은 감자 두어 개 씻고
마치 그이와 묵은 감정 베어내듯 시원스럽게 토막을 내고
사랑과 이별하던 그 아릿한 아픔을 되살리듯 눈물 흘려가며 양파 껍질을 벗기고 자른다
강장재라며 된장 발라 입에 넣어주던 마늘
육쪽 통마늘 5개
그대의 허리만치나 매끈한 대파 2대
그 파의 끈끈한 아픔을 생각하며 껍질을 벗긴다
깻잎 한묶음 씻어놓고
그이와 달콤했던 시간만큼의 참기름을 따르고
한입 베어 물고픈 풋고추 송송 썰어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한스푼 마늘 다진거 깨소금 양념장 두루 두루 섞어 젖는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쏟는 일은 예술가의 작품에 비견 할 만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맛을 내려고 음식에 온 신경을 쏟는 주부의 손은 예술가의 손이다
비록 무형의 작품으로 즐거움 속에 사라질 한 점이지만..
솥에서는 중불에 닭이 끓고 있다.
두 날개를 제외한 토막난 닭들이 살살 익어가고 있다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다시금 익어갔으면...
오늘 일찍 온다고 했는데
그녀의 마음은 이미 베란다 저 아래 아파트 광장에 나가있다
닭 위에 야채를 넣고 양념장을 끼얹고 뚜껑을 닫았다.
마치 새로운 자리 매김을 하듯
골고루 양념이 베이게 닭살에 끼얹는다
닭이 솥 단지 안에서 익어갈 즈음
멀리서 차츰 다가오는 발소리
벨소리가 황홀하게 실내에 울려 퍼지고
몸이 가기 전에 마음은 먼저 현관 문고리를 비틀고 있다
뛰듯이 달려나간 그녀 앞에 나타난 당혹한 얼굴 하나
안녕하세요 호구조사 나왔는데요
촛농처럼 굳어버린 얼굴
의아한 또 하나의 얼굴
가스 렌지 위 솥에선 닭 도리 탕이 졸아들고
그 안에 누군가의 사랑도 졸아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