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주신 은혜.
어머니 몸체처럼 넉넉한 배에
항상 그 만큼의 물만 채우고 살 수는 없을까.
파열된 실핏줄이 피를 뱉으면
음지의 생명들에게로 뭉근히 스미는 건강한 피.
어린 씨앗이 꼼지락거리며 움을 틔우고
튼실히 자라날 수 있도록 어느 만큼의 물만 가지고.
부지런한 햇살이 바닥까지 쏟아지면
물곰팡이도 그 곳에 정붙여 꽃을 피우고
배반의 칼날이 목덜미를 내리쳐 겁많은 개미들
물에 빠져 죽는 일 없도록
그 만큼의 공간을 비우고 살 수는 없을까
물이 빨아들인 물만큼의 하늘.
물빛, 하늘빛, 수면에 부유하던 온갖 것들 하나로 어우러지고
날던 새들 그 물에 목을 축이는 고마운 시간.
거듭나 흐르지 못해도
부둥껴안고 안으로 영그는 항아리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