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바다
그대는 지금 젖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손가락 끝에서 일렁이기 시작하여
심장 밑으로 들어서는 차가운 기운
낮은 물결을 차고 솟아오르는 물새
이리저리 거스르는 물거품들이
포말마다 상처가 되어 저려오는데
누가 그대 흐름의 방향을 알 수 있겠는가
지금 잠겨있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잠시 드러누운 캄캄함을 밀어내며
목숨처럼 둥글게 돌아
기슭에 부딪쳐오는 모든 것을 더듬어 나가리라
바람이 몰아오던 물굽이가 하늘에 이르면
문득,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거리
수백, 수천, 수만의 언어들이 끝없이 솟아올라
다시 부숴지고 모여들기를 반복하며
이끼낀 세월을 다스려가고 있다
시집 < 네안에서 내가 흔들릴 때 : 집사재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