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년을 쉴새없이 퍼올린 애증의 우물
나는 왜 비자금이 없을까?
장독대 땅속의 항아리속이나 부엌 시렁위 질그릇에서
비밀 예금 통장에 이르며
한숨 한닢, 눈물 한 닢, 사랑 한 닢으로
차곡히 쌓이고 덜어지는 삶의 또 다른 지혜
난 왜 그런 비자금이 없을까?
비 바람 불 때 조금은 덜 젖게해줄
작지만 힘이되는 앙증맞은 우산 하나쯤 있다면,
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살그머니 내어줄
감추어 두었던 마음이 있다면
가난하지만 부유로운 아낙일 수도 있으련만
내 우매함과 치기스러움은
땡전 한 닢도 챙겨둘줄 모르고
있는대로 죄다 내어주고
아예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쌈지돈을
그건 처음부터 내 몫이 아니었노라며
아지랑이속 봄빛 젖어드는 풍경처럼 바라보다
어머니,
왜 당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는지요.
부부란 등돌리면 남보다 못하다며
네 주머닌 니가 챙기라고
딸의 결혼 전날밤 당부하시던 어머니는
정작 당신의 속주머닌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때때로 절실하게
어딘가 삐걱거리고 긁히고, 넘어져서
마음까지 춥고 쓰라릴 때
붙잡고 늘어질 가는 끈이라도
한가닥쯤 예비해 두어야할텐데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애증으로 마름질해야
나는 비자금이란 비상구 하나를 만들어 가질까?
결혼 20년이지만
나는 아직 비자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