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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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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BY 최영신 2000-10-19

프랑스의 하늘은 불타고 있었다
묵은 잠 깨고 오른 소리는
속울음 뿌리까지 끌어내는 매미의 비명이 아니었다
지층을 깨고 솟구치게 한 물줄기
살 무너나도록 뿜어내는 것은,
머리에 쓴 모자, 선글라스, 바퀴 위로 엎드린 모습
엉성한 손발과 번들거리는 머리통, 툭 불거진 눈
'투르 드 프랑스'의 싸이클 대회를 개막했기 때문이었다
저, 숨결이 자유로운 나라
소낙비 내리는 들녘 한 켠은 햇빛 부서지고
또 한 켠은 비 맞고 서있는 마을
아주 잠시 잠깐 지나간 자리마다
드르륵 구르는 세상의 귓속으로
매미 소리 고막을 앗아가 버린다
폼 잡고 있는 나무와 아스팔트 뒤흔들며
푸른 들과 빛으로 짜낸 칠월
쓰왕쓰왕 쓰르륵, 스꺽스꺽 스르륵
매미와 바퀴들의 만남이다
지난 삶의 노래들이 낱낱이 끓어오른다

그들의 지휘자는 오래 전 숙청 당한 듯
작은 목소리만 높여 저마다 굵은 성대를 구축해 놓고
턱이 갈라지 듯 울어 제끼는 음색
본능을 쫓아 달리는 심사로 계절이 다 타는 냄새
그들이 원하는 건 무얼까
끝없이 찾아나서는 황홀한 목젖으로
매미의 권력은 성대로 저 넓은 공간 불러들이고
목표는 항상 다가서면 목마르게 갈구한 만큼
따라주지 않는 꼭지점을 내놓는구나
독특한 저마다의 위치로 생을 달구지 않는다면
아무도 커다란 나무 등걸에 매미 있음을 알지 못하는 구나
적막한 마음에 구멍 하나 뚫고 한철 내내 음률을 켠다
아아 포도 위로 떨어져 구르는 매미의 끝
세계의 숨결로 넘나들며
귓바퀴를 찡하게 흔들어 빼내가는 것들

칠월 사일부터 쏟아내는 땀방울만큼
프랑스 동부 작은 마을에서부터 일기시작한 싱싱한 바퀴 떼
칠월 이십 육일까지 여름의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수일을 시계방향으로 일주한 프랑스의 매미
벌써 중반전이다
프랑스 중부 도시 생테티엔 근처의 다리를 건너고
반쯤 녹은 바퀴와 아스팔트, 산과 강 시간을 돌고 돌아
바퀴에 붙은 매미들 져버릴 수 있을까?
저 높은 속도로 뛰는 생명의 주가로
그 다음의 폭락을 맛보지 않기 위하여
또 다른 바퀴를 선택하리라
피레네 산맥 좁은 아스팔트 길 넘어 파리 샹젤이에 골인하는 바퀴
제자리 지키며 떨리고 있는 한 철의 삶이란
여름에 태어나 여름 끝으로 사라지리라
그러나 그들은 모르리라
무너나는 살로 바짓가랑이 잡고 스러지는 기온 같은 것
우주로 들어서는 숨결의 파고가 심하게 일렁인다
매미가 세계의 귓속을 멍하게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