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향 그 흔적을 찾아..
言 直
구월 열 사흘날
태어나 자란 昌原땅 沙火마을
내리 수백년을 이어 살아온 터
性 섞임 없이 한 씨족으로만 팔십여호
낮은 산자락 길게끼고 남녘향해 앉은 동리
그리 아름답지도
특징지울 풍광도 없으나
내 태어난 곳이기에
정겨울 수 밖에
이곳을 공업도시로 만드느라
산줄기 허물어 들판 메웠기에
고향
그 흔적 사라지고
흔적 그 위로 육중한 공장들로 채웠다
뒷산 중턱에 자리한 증조부 묘택에 앉아
사라진 흔적 그 조각을 애써 모운다
열한칸 옛집은
저기 충전소가 있는 곳에서 ㅁ자로 지어졌지
대문은 서편으로 향하고
잡 앞뒤로 남새밭 있어
구기자로 울타리 만들었지
오른편으로 서른 발작 가면 샘이 있었지
그래서 그 주변을 새미골이라 불렀다
서편으로 곧장 백보쯤에 이르면 방앗간이
초등학교는 신작로 따라 육백보쯤 되었으리라
학교앞 보리논 다섯 마지기는
어느 공장아래 묻혔을까
손끝으로 어림잡아 본다
창원땅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른 큰길 낼 때
무논 여??마지기를 그 밑에 넣었지
그때 평당 구백원 꼴로 셈하여 받았으니
뭐 돈이라고 할수 있었나 그저 내주었지
마을앞 들녘 가운데로 굽돌아 흐른 개천도 가늠 해본다
그 옆에 있던 사단 비행장도
이동네 저마을 잇는 신작로는 언제 닦았는지
곧게 뻗어있었지
여름 비온 뒤 길 패이면 어른들은 부역으로 고쳐 놓곤했지
그리 넓잖은 들녁에 가뭄들어
물꼬싸움이라도 할적이면
아제비 조카 형 아우 상관않고
삿대질 해가며 싸워댔지
그 땅 비워주고
지금 사는 금담마을로 세간 옮겨 갈제
씨족들은 그래도 절반넘게 한곳으로 옮겼기에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씨족의 本貫은 밀양이나
창원땅 사람들은 우리족속을 두고 이르기를
사화 朴家라 불렀다
우리들도 무슨 큰 문중가라도 되는 듯 그리 말했지
마을 한귀퉁이 쓰러질 듯 위태로이 남아있는 제실과 서원
문중 어른께선 중수해보려
터 넓이고 돈 장만에 이래 저래 노심초사 하신다
내 언제 어르신들을 도울수 있을는지....
마을 동편 끝자락에 의좋게 놓여있는
삼형제 바위는
오늘도 길손에게 전설 들려주고 있다
산자락 한 가운데 나보란 듯 서있는 농바위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오르는 길조차 가시덤불이 가로 막는다
마을 어른 숨결 배여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
.
.
.
고향 그 위에 얹혀 살면서도
고향을 느낄수 없어
아스라히 내 기억만 더듬는다
내 기력이 쇠하는 날
고향 어떻게 그려 질려나
고향
있으되 갈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에
고향
갈수 있으되 하루해 걸려
줄지어 지쳐서 가는 사람들 있기에
그들보담
그래도 내가 더 행복한가 싶다
산천은 변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