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저 정현이예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못쓰는 글씨로..그래도 정성많은 가득 담아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는 했었는데 정작 성인이 된 지금은 단 한번도 엄마에게 이런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가끔 제 자신을 돌아보면 엄마에게 부끄러운 딸이 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죄송하고 미안할 뿐이예요..
엄마..오늘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비가 주룩주룩 내리네요..
비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으니 엄마와의 지난 추억이 떠올라 혼자서 방긋 웃어보며 추억에 잠겼었어요..
엄마 기억나세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가족들은 먼 친척이 살고 있던 시골로 언제 닿을지 모르는 길을 걷고 또 걸었었죠.. 그러다가 해가 지고 바람도 제법 깊어질 무렵에야 어느 정거장에 멈춰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겨우 그 시골마을로 가는 막차에 올라탔던 기억도 어슴프레 떠올랐어요..
변두리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서울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그 골목 앞에 있었던 제과점의 박하사탕맛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지천이 온통 감자밭이었던 그 시골마을에 그런 박하사탕이 있을 리가 없었는데 말이죠. 아침 일찍 채비하고 고개를 넘었다가 산너머로 해가 저문 저녁 무렵에야 별빛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사람들 틈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여서 장날마다 엄마가 제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서야 했었잖아요..
그 먼거리를 저를 데리고 갔었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니 왜이리 제가 철이 없었는지..
어린 나이여도 지금 30살이 다 된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어요..
아마 그 때도 지금의 계절처럼 봄꽃향기가 흐드러지게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볕 좋던 날이 갑자기 대청마루 위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었어요.
그때는 제가 무슨 심보였을까 모르겠어요..분명 장날은 아직도 멀었는데 전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박하사탕을 사내라고 떼를 부렸었죠.
후두둑, 후두둑 내리는 비는 그칠 태세가 아니었지만 떼를 쓰던 저에게 못이기시고 결국 엄마는 제 손을 붙들고 버스를 한참 기다려 읍내로 나갔었죠. 그리고는 시끌벅적한 시장통에 들어섰고 엄마 손을 꼭 붙든 제 옆으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변에 난립한 가게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로 귀가 멍멍해왔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어느 자리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점을 피셨고 저는 언제나처럼 엄마 옆에서 장난감 인형을 가지고 놀았었어요. 그리고 그 날 그 자리에서 감자 한 광주리를 팔으셨죠. 제가 그렇게 조르던 박하사탕 한 봉지를 샀을 때, 비는 그쳤지만 돌아갈 길을 빨리 재촉해야 하는 저녁 무렵이었죠..
엄마 아세요? 그 봄날 저녁, 낯선 길가 위에 불던 바람결에 한입 가득 깨문 박하향이 멀리 퍼져나갔었답니다.제 마음에도 강하게 말이죠... 감자 한 광주리를 팔아 산 박하사탕이 녹아갈수록 점점 입 안이 싸해졌고 박하사탕을 어른이 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는답니다.
그 날 덜컹대는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엄마와 나란히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저는 박하사탕이 이렇게 싸한 것은 바람이 차가워서라고 생각했었어요.
엄마.. 어느새 저도 세 살된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네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이자 유난히도 사탕을 좋아하는 우리 윤지는 심심할 때면 그 어린 시절의 저처럼 “사탕, 사탕!”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절 올려다본답니다.
저 까만 눈동자가 저리도 간절했었던가 싶어서 가만히 딸아이의 눈빛을 들여다보았어요. 그 눈동자 저편에 영사기를 돌리듯 가만히 떠오르는 오래된 필름 하나, 그 기억의 저편에 남새밭을 걸어오던 엄마가 있네요..
창문을 흔드는 저녁바람이 부는 길가엔 점점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데 지금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준비를 하고있는 제 바지주머니에서 문득 만져지는 사탕 한 개가 있네요.. 이미 찐덕찐덕해진 박하사탕을 입 속에 넣어본답니다.
얼마 전에 친정집에 내려갔을 때 군데군데 저승꽃을 피운 엄마가 준 박하사탕 몇 개가 아직 남아있네요. 이젠 제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세월만큼이나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져요.
감자국이 한소끔 끓어오른 냄비 앞에서 입 속에 가득 퍼지는 박하향 같은 진한 그리움으로 푸른 감자껍질을 벗기던 어린 시절의 엄마생각에 그만 눈물이 나네요..
엄마..정말 죄송해요..
왜그러지는 모르겠지만 언제인가부터 얼굴 한 번, 눈길 한 번 마주치는 것이 가끔은 부담스러울때가 있었는데 언제 그렇게도 늙으셨는지…. 저번에 주무시는 엄마의 손을 살며시 잡았을때 느꼈던 깡마른 손등, 다 달아 톱니가 되어버린 손톱에 제 마음이 너무도 아팠답니다.
엄마 정말 마음으로 다해 남은 시간 효도하면서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러갈께요..
그리고 아빠는 요즘 술을 적게 마신다고 하시니 정말 다행이예요..
오늘 문득 떠오른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에 펜도 들어보고 다 큰 나이에 어린아이마냥 눈물도 흘리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엄마의 옆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감사해요..
엄마..저 막내딸 정현이가 엄마 정말 많이 사랑하구요..
돌아오는 휴일에 이쁜 손녀 데리고 놀러갈께요..
사랑합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나의 엄마~!
- 비내리는 날 엄마의 귀여운 막내딸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