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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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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9-16

연속되는 초인종 소리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대문을 열었다.
대문 앞에는 이 서 있었다반갑지않은 얼굴을 확인한 순간 도로 대문을 닫을까 잠시 생각했으나 박선배의 울음소리와 의 상기된 얼굴빛으로 보아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어 말없이 눈인사를 했다.
 
- 잠깐 애정누나한테 와줄 수 있어요?
그동안의 관계로 봐서는 있을 수 없는 대화임에 분명하지만 의 다급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박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장맛비가 온 뒤라 마당 한켠의 정원과 텃밭으로부터 습한 기운이 훅 느껴졌다.
지난밤 세찬 비바람에 긴 꺽다리 해바라기도 기세를 꺾인 채 모로 누워있었다.
과 내가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도 박선배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아까 창문으로 얼핏 보았던 남자 두 명이 거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다 급하게 꽁초를 발로 비벼끄며 일어섰다.
 
은 먼저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툇마루 앞에 쭈뼛하게 서 있었다.
방안에서 들려오는 박선배의 울부짖음으로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 상황에 내가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한번도 맞이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순간이 공포스러울 뿐이었다.
은 나에게 올라오라는 시늉을 해보이고는 박선배가 있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의 부축을 받고 거실로 나온 박선배의 몰골은 헝클어진 머리퉁퉁부은 얼굴에 거의 실신 직전으로 초췌했다.
그 와중에도 박선배는 내가 와준 것을 고마워했다.
 
중학교때 선배의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주머니 혼자 남겨진 농장을 일구며 박선배를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아주머니마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제는 정말 혈혈단신이 되어버렸다.
먼 친척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지만 오랜 세월 단절하고 살아온 탓에 
상을 치르는 동안 조문객이라고는 농장 관련된 사람들 몇 명과 경영학과 선후배들그리고 
상주처럼 살뜰하게 곁을 지켜주는 과 의 친구들 뿐이었다.
큰일을 치르기에는 우리는 모두 어린 나이였으므로 서로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남겨진 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장례식장부터 공원묘지까지 각자의 부모님을 통해 조언을 들어가며 장례처리를 해나가야 했다.
 
한 사람의 생을 마감 처리하기란 단 삼일 만의 시간만큼 순식간이고 허망했다.
아주머니를 화장해서 떠나보낸 후 박선배는 밤마다 악몽을 꾸며 우울증세가 시작되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누워버린 박선배를 나몰라라 하기엔 나의 인간적인 도리가 용납되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불쑥불쑥 깨어나 혼자 울부짖는 소리에 잠귀 밝은 나는 덩달아 한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엄습하는 바람에 불을 켜고 자는 습관까지 생겼다.
공부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한참 중요한 시기에 아주머니의 죽음은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고 박선배와 과의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 혜주야나는 이제 아무도 없어니가 나랑 언니 동생하며 지냈으면 좋겠어너랑 의지하며 살고 싶어.
 
박선배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 언니라는 호칭을 바꿔보려 노력하기로 했고 하루 한 끼는 선배와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도 겸상을 하는 일이 잦았다.
모친상에 상주처럼 지켜준 에 대한 박선배의 신뢰는 대단했고 친남매처럼 살가워진 두사람 사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아주머니의 사망 소식과 이후의 근황들을 김영규에게 편지로 알리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 담긴 답장을 보내왔다
김영규는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는 각오로 공부에 전념하면서도 잠깐씩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나에게 일기 같은 편지를 써 모았다가 보내주었다.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내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투정과 함께 한달 뒤에 서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7월의 강렬한 햇볕은 농장의 사과를 여물게 하면서 더불어 잡풀들도 성장을 재촉해 과수원 이곳저곳에 어른 키만큼 자란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겼다.
박선배는 아주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농사일 경험이 있어선지 그때그때 맞춰 진행해야 하는 일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나와 은 선배의 고민을 덜어줄 재간이 없었는데 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더부살이하는 친구 두 명이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번 의 집들이에 왔던 고향 친구들인데 그 둘은 군입대를 기다리며 하릴없는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으므로 박선배의 모친상 후로 의 자취방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던 중이었다.
 
그즈음 나는 김영규와 한 약속 하나를 어기고 있었다.
뒤쪽 창문 커튼을 꼭꼭 닫고 지내기로 했으나 날씨도 너무 더웠을뿐더러 하루에도 몇 번씩 뒷집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생겨 아예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야 했다.
이 뒷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야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일이었지만 다시금 그 전처럼 돌아가면서 마음 한 켠에는 김영규에 대한 미안함과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태양이 쨍쨍한 7월의 둘째 주말이었다
모닝커피를 타서 거실을 지나치다 뒷집 마당에서 박선배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뒷집의 세 청년들과 박선배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과 친구들의 복장으로 보아 아마도 농장에 작업을 나갈 모양새였지만 반면 밀짚모자에 노란 숄 타올을 두른 박선배의 모습은 마치 바캉스라도 떠나는 폼새였다.
 
- 혜주야너도 농장에 같이 가지 않을래공부만 하지 말고 바람도 좀 쐬고 오자오늘 옥수수도 딸 거야.
한동안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간만에 밝은 모습을 되찾은 박선배와 시선이 마주치는 바람에 딱히 뭐라 거절을 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반바지에 헐렁한 흰셔츠를 입고 나가니 이미 일행들이 우리집 대문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 혜주 너 긴바지로 갈아입고 나와라그 이쁜 다리 모기 물리고 생채기 난다.
 
박선배의 지시대로 바지를 갈아입으려고 보니 청바지 말고는 편하게 입을만한 바지가 없어 하는 수없이 파랑색 바탕에 세로로 두 개의 흰 옆줄이 있는 학과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학기 초에 단체 구입을 한 후로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츄리닝 차림은 불편하고도 어색했다.
츄리닝 차림으로 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 이 웃었다그 특유의 입술을 샐쭉거리며.
김영규와의 그 일이 있은 후로 가까이 할 일이 없었고 박선배의 모친상으로 인해 우리 둘의 개인적인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터라 나를 향해 웃는 의 미소는 오랜만이었다.
 
璡 때문에 불편하게 오가던 골목길김영규가 장미 가시를 뽑아주었던 골목길을 빠져나와 우체국앞 승강장에서 시외까지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우리는 40여분간 이동했다.
남자들은 맨 끝자리에 나란히 세 명이 앉았고 박선배와 나는 버스 개폐문 바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지난번 종강하던 날 김영규의 고향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비포장길을 서로 어깨를 부딪쳐가며 흔들리며 앉아가던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김영규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나는 그와 나란히 어깨를 견주며 인서울의 꿈을 이룰수 있을까.
그의 옆자리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는 생각으로 질투심이 났던 느낌이 되살아나 기분이 가라앉았다.
 
박선배네 농장으로 이어지는 소로 갓길 양쪽엔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배롱나무에 진분홍 꽃이 만개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