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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재신다 와일더 조회 : 364

마담 엑스

당신은 아름다웠다.


깊고 어두운 다색茶色의 눈동자는 온화해 보였지만, 그 너머에는 영리하고 교활하며 잔인한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창때의 나이였다. 스물다섯이나되었을까.

 

새로 산 나의 흰색 가죽 소파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진회색 아르마니 팬츠를 입은 길고 늘씬한 다리로 발목을 엇갈리게 하였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꼬았다.
그러고는 롤렉스시계를 두른 손을 가만히 들어, 목이 파인 검은 티셔츠에 붙은, 잘 보이지도 않는 실 가닥을 가만히 떼어냈다.

 

단단하지만 가는 손가락을 무릎에 문지르더니 다시 그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았다가, 스마트폰을 찾으려는지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물론 스마트폰은 없었다.
그에게서 그 기계를 떼어 놓는 것이 이 수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으므로. 조너선에게는 확실히 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이름은 조너선이었다. 존도, 조니도 아닌 조너선. 그는 첫 번째 음절에 미묘하게 힘을 주어 자기 이름을 ‘존어선’으로 발음했다.
흔해 빠진 이름에 악센트를 달리 주다니, 나름 귀여운 발상이었다.

 

발음하기 전에 내가 듣고 있는지, ‘나에게 집중해’라고 말하는 듯이 뜸을 들였다. 조너선은 그저 어린아이 같았다. 나보다 고작 서너 살 어릴 뿐인데. 나이는 단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 횟수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법이다.

 

안절부절못하며 앉는 모습뿐 아니라 곳곳에서 어리숙한 성격을 드러냈다. 나를 향한 그윽한 눈동자에서 분명히 느껴졌다.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힌 그의 두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것저것 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너선도 다른 남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너선은 지금까지 이곳을 찾아왔던 애어른 같은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너선은 탐욕스럽고 굶주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날 가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 두 사람이 얽매인 이 계약서의 규정을 피해갈 수 있을지, 어떻게하면 나를 차지해서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었다. 동시에 언제 내 블라우스가 흘러내릴지, 혹은 언제 내가 몸을 숙여 내 블라우스 안을 훔쳐볼 수 있을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나를 거머쥘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다른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너선도 나를 가질 수는 없었다. 절대로,어림없는 일이다.

 


나는 그의 여자가 아니니까.

 

나는 한 남자, 오로지 한 남자의 여자이고, 그는 나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는 모르겠지만 조너선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조너선, 그리고 조너선과 다를 바 없는 이전의 다른 남자들은 그의 존재를 궁금해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 사람이 지닌 교양과 품격, 빈틈없는 사고,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그의 매력과 용모, 누구든 자연스럽게 자기편으로 만들어 군림하는 능력, 다른 남자들은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조너선 따위는 절대 흉내도 못 낼 능력이었다.

 

그는 하늘에 궤적을 그리는 태양이었고, 조너선은 밤하늘을 부유하는 반딧불이였다. 반딧불이는 자기가 가장 밝게 빛난다고 착각하겠지만,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조너선과 함께 소파에 앉아 하니앤손스 얼그레이 티를 마시면서 그가 어떤 자세로 앉아 있는지, 앉아서 팔을 어떻게 늘어뜨리는지, 차를 마실 때 손목은 어떻게 두는지 자세히 살펴보았고, 목을 세우고 앉은 모양새나 눈동자 굴리는 모습까지도 신경을 썼다.
자세히 관찰하며 그의 특징을 잡아내고, 머릿속에 기록하면서 앞으로 수업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 준비했다.

 

조너선은 끔찍이도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술집 의자에 처박혀 맥주나 벌컥벌컥 마시는 흔해 빠진 남학생같이 스포츠 얘기만 계속해서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그런 시시한 이야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어떤 선수에 대해서 계속 지껄이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끊을 만한 타이밍이 되면 ‘아’ 하고 대꾸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 것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

 

조너선에게는 이 수업이 정말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조너선이 중요히 여기는 축구 얘기를 한참 떠들게 내버려 두고 관심 있는 척 연기하면서,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을 계속 낭비할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조너선이 할 말이 떨어지거나 내가 단지 그의 기분을 맞춰 주고 있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되면, 생선 내장을 들어내듯이 그를 손질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조너선의 이야기는 정말 지루해 너그럽게 봐줄 수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선수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혼자 계속 점수를 올리는 거예요, 막. 완전 짐승이 따로 없더라고요. 일단 공이 그 선수한테만 가면 다른 선수들은 진짜 막 손도 못 대고 말이에요. 그니까 경기할 때마다 ‘야, 그 공을 걔한테 주란 말이야, 이 멍청아’ 라고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그 선수한테 공을 주는데, 그렇게 하면 끝이죠, 뭐. ‘판타지풋볼리그’를 할 때마다 계속 그 선수를 찍고 있으니까 떼돈을 버는 건 이제 시간문제예요…….”

 

조너선은 말하는 동안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원을 그리듯 손을 계속 빙빙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나는 이 말들이 모두 의미 없는 덩어리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듣고 있었다.

 

나의 찻잔이 비었다. 찻잔에 차를 채워 반 잔을 더 마셨다. 그런데도 조너선은 계속 떠드느라 첫 잔도 다 비우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이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들어 줄 수 없었다.

 

내가 쨍그랑 소리가 날 정도로 찻잔을 세게 내려놓자, 조너선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잠시 방이 침묵에 잠길때까지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또한 침묵을 음미하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조너선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소파에 앉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담 엑스, 미안해요, 나는…….”

 

“그만하면 됐어요, 존어선.”

 

나도 조너선의 발음을 따라했다. 첫음절에 힘을 주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얼마나 바
보처럼 들리는지 그가 좀 깨달았으면 싶었다.


“내 시간을 거의 삼십 분이나 낭비해 버렸군요. 당신 아버지가 이 수업에 시간당 얼마를 지불하는지 알고 있어요?”


“나는 저기…….”


나는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어디한번 말해 봐요. 쓸데없는 말은 다 집어치우고, 요점만 간단하게 말해 봐요.”

“한 시간에 천 달러예요, 마담 엑스.”

“맞아요. 시간당 천 달러. 그런데 축구 얘기나 지껄이면서 삼십 분을 잡아먹었으니, 지금 얼마나 버린 거죠?”

“오백 달러군요.”

“맞아요. 산수는 잘하네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분노를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설명해 봐요, 존어선. 내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내 시간을 쏟아부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설명해 봐요.”


“나는 저기…….”


다시 쨍그랑 소리가 나도록 찻잔을 세게 내려놓으니 조너선은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일어서서 옷을 매만지고 ―그러는 사이 조너선은 두 눈으로 내 몸을 훑어보았다― 현관
문 앞에 가서 섰다.


“이제 그만 가시죠, 카트라이트 씨.”

“아니, 마담 엑스. 미안해요. 조심할게요. 약속해요.”

“나아질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여요, 카트라이트씨. ‘저기’나 ‘막’ 같은 표현 없이는 말도 못 하고, 계속 상스러운 표현만 사용하죠. 축구 이야기를 하느라 수업 시간을 낭비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에요.”

“저는 대화를 하려고 한 것뿐인데요, 마담 엑스.”


“아뇨, 존어선. 당신은 나와 대화를 한 게 아니라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었어요. 그저 말하는 게 즐거워서 배설물을 쏟아냈을 뿐이에요. 아마 당신……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런
배설물을 대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나는 성숙한 여자예요. 당신 친구가 아니라.

술집에서 만난 머리 텅 빈 여자라면 당신의 하얀 치아나 헤어스타일, 값비싸 보이는 옷에 홀릴 수도 있겠죠. 당신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건 나하고 상관없는 문제예요, 카트라이트 씨. 눈곱만큼도요.

그러니까 이 수업을 계속 하고 싶다면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거예요. 되도록 빨리.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도, 허튼소리를 참아줄 인내심도 없으니까요.”


“미안해요, 마담 엑스.”


나는 조너선을 노려보았다.


“졸렬하게 구는군요. 지금 어린애처럼 굴고 있네요. 비속어 없이는 대화할 줄 모르고, 그마저도 쓸데없는 이야기고요. 게다가 당신 단점을 지적하니, 비스킷 통에 손을 댔다가 들킨 남자애처럼 사과하는군요.”

 

조너선은 앞으로 숙인 채 손을 무릎 위에 얹고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가 긁는 시늉을 했다가 잡아당겼다 하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품위도, 기본예절도 없는 데다 태도도
엉망이었다. 나무토막도 이 사람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조너선과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나한테도 큰 시험이 될 것 같았다. 조너선에게 주의를 주면서 나도 모르게 화가 끓어올랐다. 어수룩한 바보처럼 구는 걸 보고 있자니 화가 났
다. 조너선처럼 말은커녕 버벅대며 비속어까지 쓰는 남자한테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다니 그 사람…… 에게도 화가 났다.

 

조너선은 내가 그동안 만났던 고객들 중에서도 정말 최악이었다. 이렇게 지루하고 한심한 인간을 상대하고 있자니 속으로 화가 끓어올랐지만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가까스로 참았다. 그런데 그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화났다는 건 그에게 썩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등 펴고 똑바로 앉아요. 손은 가만히 두고요. 등을 소파에 기대고 힘을 빼요. 몸가짐만으로도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카트라이트 씨. 항상 여유 있는 자세를 취하도록 해요.”


“난 지금도 여유 있어요.” 조너선이 이렇게 반박했다.


굳이 이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그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그의 무릎에 닿을 정도로 바싹 붙어 섰다.


그리고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내 태도와 분위기로 그를 완전히 깔아 뭉개려는 것처럼,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그를 무시하는지 그가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그를 바라보았다.

 

조너선,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돈 많은 집에서 자란 어린애야. 예쁘지만 버릇없이 자란 어린애. 조너선을 내려다보면서 내 생각을 눈빛에 담아 전달했다.

 

조너선은 불편한 듯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다시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다 마침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한 손가락으로 바지의 주름을 더듬어 내려갔다.

 

나는 조너선 앞에 서서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는 결국 지쳐 버렸다.

 

“뭐요? 어쩌라고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요? 그런 걸 물으면 안 되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보다, 당신이 뭘 어떻게 할 건지 나한테 말해 줘야죠. 그걸 알아야 수업을 시작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