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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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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리는 저녁(1)


BY 고구마C 2016-02-26

1.

 

<별이 내리는 저녁>

 

 

두손이 얼 정도의 쌀쌀한 날씨에 굳이 옥상으로 불러낸 이유는 뭘까?

 

류는 검은색 장갑이 다 덮지 못한 손가락 끝으로

 

30분째 풀룻을 연주하고 있다.

 

숨을 고를때마다 하얀 입김이 발그스름한 그의 볼을 우윳빛으로 쓰다듬는다.

 

 

 「 잘못한게 많지만,

    천사가 되고 싶은게 꿈이야 」

 

 

처음 그를 만났을때, 서먹한 기분으로 꿈이 몹니까, 란 질문의 끝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런 야무진 꿈을

가슴 깊이 심은 그는, 지금 천상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은빛천사처럼.

 

너무 곱고 아름답다.

 

 

밤을 뜸들이는 기다림으로..

 

그의 긴 연주를 듣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이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것,

 

파삭파삭한 마음의 거센 날개짓이

 맑고 고운 음색에 눈을 감고 부드럽게 잠이 든다.

 

 

"따뜻한 계란말이가 먹고 싶어."

 

양손 끝을 입에 대고 더운 김을 후, 후 불어대고 있는 류가 어느새 내 옆에 와

 

앉아 있었다.

 

"플룻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는 거야?"

 

류는 고개를 살짝 가우뚱 하다가

 

"계란 말이를 먹고 싶어요., 내가 연주한 곡인데. 그런 느낌이 안 들었어?"

 

어이없이 바라보던 난 류의 손을 이끌었다.

 

 

"일단, 옥상에서 내려가자.

 

 계란 말이 먹기 전에 얼어버리겠어"

 

 

은빛 플룻이 별빛에 비춰 반짝거리고.

 

우린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계란 말이를 먹으러

 

도시의 불빛 아래로 걸어갔다.

 

 

 

2.

 

파 송송.. 계란 탁!

 

 

 

짭쪼롬하게 소금도 조금 뿌려넣고

 

 

 

동그랗게 봉긋 솟아오른 계란 노른자를 젓가락으로 힘껏 젓는다.

 

 

 

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 지글지글하게 고소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계란말이 대령이오! 」

 

 

 

뜨끈한 접시의 바닥을 손바닥으로 들어 재빨리 식탁에 내려놓았다.

 

 

 

「 앗 뜨거!」

 

 

 

 금새 빨갛게 익어버린 손바닥을 두손으로 비비고 있을때

 

 

 

류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며 신중하게 젓가락으로 두꺼운 계란 말이의 끝을 큼직히 떼어 입에 가져간다.

 

 

 

「맛.있.어」 「맛.있어.맛.있어.」

 

 

 

맛있다는 말을 연거퍼 하며

 

 

어린아이처럼 박수까지 치며 폴짝폴짝 뛴다.

 

 

 

「 별 밤에 연주한 수고비야. 남기지 말고 먹어」

 

 

 

 짐짓 흐뭇한 미소를 감추며 후라이팬을 정리하고 있는데,

 

 

 

「 성냥 있어요? 」 란 무덤덤한 말이 등 뒤에서 들린다.

 

 

 

무언가에 놀란듯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 왜 성냥을 찾았어.? 그날 말이야. 우리 처음 만난 날」

 

 

 

뜨거운 후라이팬에 물을 붓자 지지직 소리가 난다. 뜨거운 열기가, 차가운 물에 의해 식혀지고 있다.

 

 

 

「 글쎄.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의 이야기따윈 반갑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며 류를 바라본다.

 

 

 

「 실연을 당했던게야. 그렇지 않으면 열대야 속에서 낯모른 사람에게 성냥을 찾았을 이유가 없지.」

 

 

 

 계란이 참 맛있다, 란 말을 하듯 꼭꼭 씹어 실연,이란 말을 맛있게도 이야기 한다.

 

 

 

「 그랬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 날의 기억따윈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

 

 

 

류와 처음 만났던 그 날, 난 그의 추측대로 실연 비슷한 걸 당했었다.

 

 

 

짝사랑하던 남자가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

 

 

 

친한 친구의 무릎에서 엉엉, 눈이 빨개지도록 울음을 터트렸던,

 

 

반복되던 나날들이 있었고, 나의 눈은 눈물로 항상 촉촉히 젖어 있었다.

 

 

 

그런 나를 위로하며 어깨를 다독이던 친구가,

 

 

 

 나 모르게 그 남자와 데이트를 즐겼다는 사실이,

 

 

 

꽃다발을 내밀며 그녀에게 사귀자고 했다는 말을..

 

 

 

그녀의 입에서 듣고 난 직후였던것 같다.

 

 

 

실어증에 걸린 여자처럼, 멍하게 그녀를 보다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였는데..그 말이.., 「 축 하 해. 」

 

 

 

난 엉터리 같은 말을 그녀에게 내뱉고는 뒷걸음치듯 도망쳤다.

 

 

 

분명 열대야가 계속되서 잠을 이루기 힘들었던 저녁이었는데,

 

 

 

 미친 여자처럼 장롱에서 두꺼운 파카를 꺼내입고는

 

 

 

집 앞에 있는 커다란 호수로 내달렸다.

 

 

 

 파카 안으로 피가 콸콸,..

 

 

 

눈 물이 콸콸...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 같아 옷을 두 팔로 꼬옥 감싸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나무그늘을 찾아 앉았다.

 

 

 

초록 풀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던 평화로운 저녁녘에

 

 

 

상처입은 소녀는 파카 위로 호수처럼 맑은 눈물을 계속 흘려대고 있었다.

 

 

 

한순간 눈물도, 마음도, 얼음처럼 굳어버린듯,

 

 

 

못내 추워 미칠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감싸고 있을때

 

 

 

아작 아작, 과자를 씹어 먹으며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낯모르는 남자에게, 「 성냥 있어요? 」라고 덜덜거리며 물어보았다.

 

 

 

그 순간, 류는 남아있던 과자를 입에 탈탈 털어놓고는

 

 

 

가만히 다가와 꼬옥 안아주었다.

 

 

 

고소한 과자향이 이곳 저곳에 묻어 있는 다 큰 남자는

 

 

 

「 Hug는 외로움을 녹이는 뜨거운 초콜릿이에요

 

 

 

라며 짐짓 어른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