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움이 와락 밀려온다. 뫼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돌아왔다는 것이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이선을 만날 때마다 기다림이 일상이 되었음에도 늘 가슴을 졸인다.
“아줌마!!! 아무 일 없는 거죠?”
뫼가 다급하게 묻는다.
“왜? 니들이야말로 괜찮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야?”
외려 이선이 애니민들을 걱정한다. 뫼가 한숨을 푹 내쉰다.
“난 괜찮아. 무슨 일이야?”
이선은 애니민들에게서 불안과 초조함을 읽어낸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다가온다. 가슴이 아리다.
“우릴 조종하고 있는 건 소훈과 애니가 아니었어요. 우리에게 유전자정보를 입력한 이균이라는 공학자 놈이었어요. 소훈과 애니도 못됐지만 그 놈은 더 못됐어요.”
“애니가 니들을 조종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한데 어떻게?”
“그런 줄 알았어요. 애니와 소훈도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한데 아니었어요. 공학자, 그 놈이 뒤에서 그렇게 조종하고 있었던 거예요. 소훈과 애니도 감쪽같이 속은 거죠.”
“그들은 아직도 몰라?”
“이젠 알아챘을지도 몰라요.”
“공학자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거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찾아가는 길은 알아요. 땅속으로 연결된 굴이 있어요. 놈이 애니민을 하나 더 만들어 우리에게 보내겠대요. 꿍꿍이가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놈 말대로 우리가 놈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요.”
“아니? 아직은 그러지 못해. 지금 잠잠한 걸 보면 아직 거기까진 이르지 못했어. 니들은 내 작품을 바탕으로 살아내고 있는 거야. 놈이 내 작품을 니들 삶에서 떼어내지 못하면 놈의 생각은 실현되지 않아.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놈이 뒤에서 조종만 했던 것은 다 그 때문이었어.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 놈은 지금 그 방법을 찾고 있을 테니까. 어쩜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그땐······.”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다. 말을 다 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어버린다. 차마 다음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우린 놈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는 것이죠?”
“맞아. 그래서 거기까지 가기 전에 그걸 막을 길을 찾아내야 해. 나도 도울 방법을 찾아내겠지만 난 거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 내 현실도 있으니까. 컴퓨터 앞에 오래 있을 수도 없어. 두어 시간 글을 쓰고 나면 몸이 피곤하거든. 돕고 싶은데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질 못하네.”
“죄송해요.”
“그런 마음 가질 필요는 없어. 니들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데. 누구보다 씩씩하게 잘 살아내고 있잖아. 이곳 젊은이들보다 훨 나아. 그걸 지켜볼 수 있는 것만도 어딘데.”
“그렇다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너무 막막해요. 뭘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지 너무 막막해서 겁이 나요. 놈의 꼭두각시 인형이 되면 그땐 모든 게 끝나는 거죠?”
“그 생각에 너무 매달리지 마! 어차피 피조물에게 삶이란 어느 하나도 정해져 있는 게 없어. 생각하면 막막한 게 당연해. 정해져 있는 듯 보인다 해도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선택한다 해도 그 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삶이야. 그냥 부딪혀 가는 거야. 그렇다고 그냥 막 들이받으라는 것은 아니야. 나름대로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부딪쳐야 해. 그래야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어. 그게 삶이야. 니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러긴 한데······.”
뫼는 자신이 없다. 그만 얼버무리고 만다.
“공학자라는 놈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야. 그에게도 앞이 훤히 내다보이지 않는다고. 그런데도 찾고 있어. 세상엔 하나의 길만 있는 건 아니야. 공학자에게 니들을 수중에 넣을 길이 있다면 그걸 막아낼 길도 있어. 그게 내 생각이야. 그러니 힘을 내!”
이선의 말에 뫼의 귀가 번쩍 뜨인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이균에게도 앞은 내다보이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그도 어둠 속을 헤매며 기다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균이나 자기들이나 다를 게 없다.
“아줌마 말 들었지? 그 놈도 막막함을 헤치며 기다려왔어. 우리나 다를 바가 없었다고. 그러니 우리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어. 아줌마, 고마워요.”
뫼가 이선의 말에 힘을 얻는다. 늘 언짢아하지 않고 힘을 보태주는 이선이 고맙다.
현실 속으로 걸어가는 이선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뫼는 화면을 닫고 조용히 빠져나온다.
뫼의 몸이 천천히 돌아간다. 다섯이 뫼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서있다. 그의 몸이 돌아가자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뫼에게 쏟아진다.
“내일 다시 주저앉을 일이 생긴다 해도 오늘은 일어날 수 있어. 들 말대로 자축하자! 어쨌든 지금은 나쁘지 않잖아. 그것만도 어디야?”
기대와는 다른 엉뚱한 말을 꺼낸다. 하지만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체력이 있어야 버틸 수가 있다. 앞도 내다볼 수가 있다.
“그래. 먹을 건 우리가 준비할게. 넌 머리 좀 식히고 있어.”
누리가 흔쾌히 받아들인다. 들과 뫼만 남기고 몰고 나간다.
“들, 너도 가! 니가 제안했잖아. 니 덕에 푸짐하게 차려놓고 맘껏 떠들어 보자!”
들도 내보낸다. 들을 옆에 앉혀놓고 바라보게 할 수는 없다. 혼자여야 한다. 혼자 남는다. 이균을 떠올린다. 누리는 쉬라지만 쉴 수가 없다.
“이균, 몸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욕망으로 들끓는, 분화구를 지닌 활화산이다. 그 분화구 가장 위쪽에 자신들이 얹혀있다. 그는 분화구 가장 위쪽에 자신들을 올려놓고 세상을 흔들려 하고 있다. 애니민은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조금 달라도 나머진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데 아니라 한다. 제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에 잔뜩 들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그 창조물을 주무를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의 생각을 앞질러야 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도 그 생각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그는 바탕화면에서 자료로 접근해간다. 이균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어디서 잔뜩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선이 아직 열어보지 않은 파일에 가서 멈춘다. 시선이 가 닿는 순간 온몸이 서늘하다. 왠지 거기서 어떤 기운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