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든이 ㅎㅎ 웃는다. 누리도 깔깔 웃는다. 꿀꿀하던 기분이 날아간다.
“잠깐 숲에 다녀올까? 뫼도 함께.”
“좋지? 간만에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심장소리 좀 듣자!”
누리가 헤헤 웃는다. 숲이라는 말만으로도 벅차게 들뜨는 모양이다. 그걸 숨기지도 않는다.
“숲에 가는 게 그렇게 좋으냐? 니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그럼 넌, 아니냐?”
“생동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더라.” 이든이 피식 웃는다. 숲을 누빌 생각을 하니 그도 설레긴 한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만 머물러 있었다. 여자에게 매달려 다른 건 잊은 듯이 사는 뫼 주변만 맴돌았다. 끈질김도 없이 어정쩡하게 서성거리며. 그나마 2013년을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신기루 같은 2013년이 삶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후론 서성거리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았다. 기꺼이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그게 숲을 누비는 것보다 짜릿하진 않은 모양이다. 숲을 누빈다는 생각에 온몸이 들떠간다.
“잠깐 여기 있어. 내가 뫼에게 물어볼게.”
이든이 몸을 일으킨다. 화면 앞에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뫼는 침대에 누워 있다.
“왜? 기분이 꿀꿀해?”
이든이 뫼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그냥. 상큼하지는 않아.”
뫼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럼, 숲에 다녀오자! 꿀꿀한 기분도 털 겸.”
“누리도 간대?”
뫼가 관심을 보인다. “응. 숲에 갈 생각을 하니까 심장이 팔딱팔딱 뛴단다. 너도 그러냐?”
“나? 나는 쿵쿵 뛰는데?”
뫼가 가볍게 웃는다.
“쿵쿵은? 팔딱팔딱이지.”
언제 뒤따라 왔는지 누리가 다가오며 뫼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주둥이에 온통 피 범벅이가 된 채 먹이를 물어뜯는 짐승이 앞에 있다고 생각해봐라! 팔딱팔딱일지. 난 어찌나 심장이 쿵쿵거리던지 눈에 띌까봐 꿈쩍도 못하겠더라.”
뫼가 눈빛을 빛내며 말대거리를 한다.
누리와 뫼가 ‘팔딱팔딱’과 ‘쿵쿵’을 놓고 옥신각신한다. 그걸로 좀 전에 있었던 주먹질을 말끔히 씻어낸다. 웃음까지 주고받고 한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자! 누리가 팔딱팔딱 뛰는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해서 그동안 죽을 맛이었단다. 살 맛 날 만큼만 갔다 오자. 아무래도 이 자식 숲-체질인가 봐. 숲-체질인 놈한테 머리 싸매고도 풀어내기 힘든 문제들을 들이대니 죽을 맛 아니었겠냐? 가끔 몸 풀기로 숲에도 한 번씩 다녀오자. 뫼, 괜찮지?”
“이 자식 잃는 거보다는 그게 낫겠다. 대신 앞으로 주먹은 사양이다? 니 주먹이 얼마나 아픈 지 알기는 하냐? 온몸이 얼얼하더라.”
“살짝 건드린 것뿐이었어?”
“니 근육질에 살짝이 있기나 하냐? 닿기만 해도 뻐근하더만. 그러니 그 주먹 함부로 들이대지 마!”
뫼가 다짐을 받는다.
“좋아. 대신 니들도 가끔 이렇게 숲에 나오는 거다?”
누리는 뫼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기분이 좋다. 꿀꿀했던 기분은 죄 떨구어지고 없다. 근질근질하던 몸도 기분 좋게 달아올라 있다. 숲을 휘젓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콧소리가 흥얼흥얼 새어나온다.
“자식, 가둬뒀다간 사나운 짐승처럼 울부짖고 날뛰겠다.”
“지금도 날뛰고 싶은 걸 참고 있다는 것만 알아. 그러니 그동안은 어땠겠냐? 죽을 맛뿐이었겠냐?”
누리가 넉살 좋게 말한다. 뫼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만다.
“그래. 니 터전이다. 실컷 휘젓고 다녀봐라.”
“나 혼자 무슨 재미로?”
누리가 이든과 뫼를 잡아끈다. 둘이 누리의 판에 억지로 끼어든다.
“뭐 할 건데?” “쉿!”
누리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몸도 바짝 낮추고 움직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손으로 둘에게 앉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든과 뫼는 누리의 손짓에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토끼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 가까이 오면 잡자고.”
누리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인다. 이든과 뫼는 일어나고 싶은 걸 참는다. 어차피 누리를 위해서 나온 숲 나들이다. 기분을 맞춰주기로 한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다. 누리 말대로 정말 토끼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다가오고 있다. 뫼는 겁 없이 다가오는 토끼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달아나라고 손이라도 휘젓고 싶다. 한데 누리의 눈빛이 너무도 진지하게 반짝인다. 때맞춰 입 안엔 침이 고인다. 그냥 내버려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