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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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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그리고 설렘


BY 한이안 2015-04-06

이게 무슨 소리지?”
누군가 당신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모양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불렀다고? 난 그냥 단추를 눌렀을 뿐인데?”

뫼는 아직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 누른 그 단추는 다른 곳에 있는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장치입니다.”
그래? 그럼 지금 들려온 이 소린 내가 보낸 신호에 대한 답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거지? 그렇지?”
뫼가 들떠서 큰소리로 말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런 거 같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란 말이지?”

마음이 꽉 차온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혼자 남게 될까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마음이 들뜸으로 한결 가벼워진다.

. 그렇습니다.”

어휴~, 다행이다.”

뫼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자료가 대꾸 대신 소리 없이 웃는다. 몸에서 그게 느껴진다.

나가고 싶습니까?”

날 비웃은 거야?”

뫼가 자료의 말을 무시하고 날을 세워 묻는다.

밖에 나가보시렵니까?”

자료는 뫼의 말을 못 들은 듯 딴청을 부린다. 뫼도 더 따져 묻지 않고 얼른 마음을 추스른다. 다그쳐 따졌다가 자료가 토라지기라도 한다면 자신만 손해일 뿐이다.

그건 아직······.”

뫼가 망설인다. 아직은 자신이 없다. 바깥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내온 누군가도 잠시 잊는다.

알았습니다. 그건 좀 더 생각을 해보십시오!”

자료도 끈질기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마음이 허락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거기까지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뫼는 가림막을 올리고 창밖을 내다본다. 나무와 풀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마음이 이상하게 설렌다. 두근거리기도 한다.

밖은 나무와 풀들만이 사는 곳이야?”
아닙니다. 새와 짐승, 물고기들도 있습니다. 당신도 원하면 그곳에 가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건 싫어. 이상하게 겁이 나.······ 왜지?”

엉겁결에 겁난다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머쓱하여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찝찝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없다. 그래 솔직해지기로 한다. 그게 편할 듯하다.

바깥 세상에 익숙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자료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익숙지 않아서?”
아마도.”

한데 왜 풀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 새도 짐승도 물고기도 보이지 않아.”
풀과 나무에 가려 그렇습니다.”
?”

선뜻 나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지만 궁금한 것은 가득하다.
그게 사는데 이로우니까요. 다 드러내놓고 살다보면 다른 생명체의 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밥이 된다는 게 뭔데?”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살 수가 있습니다. 풀과 나무는 햇볕과 공기와 물만 있으면 되지만 움직이는 것들은 다른 생명체를 먹어서 힘을 저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이때 잡아먹히는 것들을 먹이 혹은 밥이라 합니다.”
뫼는 몸을 부르르 떤다. 몸이 점점 더 움츠러든다. 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싹 달아나고 없다. 설렘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얼른 가림막을 내린다.

왜요? 두려워서요?”

넌 아니야?”

난 생명체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뫼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자료의 말에 깜짝 놀란다. 자료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시 알 수가 없다.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는데 생명체가 아니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맞습니다. 내겐 눈물도 피도 없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침도 고이지 않습니다. 난 그냥 자료일 뿐입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사그라져 결국엔 없어지는, 형체도 없는 자료 말입니다.”

뫼는 왠지 자료가 가엾다. 쓸쓸함도 다가온다. 자료마저 없어지고 나면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못 견디게 아프기도 하다. 혼자 남겨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자료의 말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저 훅 다가온 혼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다.

내 옆에 지금처럼 있어주면 안 되나?”
그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

그건 아주 먼 과거에 누군가 내 운명을 정해 놨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어진 운명을 내 맘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내가 바꿔주면 되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내 운명은 날 만든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데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난 널 그냥 보내줘야 하는 거야?”
. 그게 날 위하는 겁니다. 난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살아 있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날 말끔히 잊을 날이 올 겁니다.”

설마?”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잊는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여긴다.
설마가 아니라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불행입니다.”

뫼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자료가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때 신호가 날아든다. 좀 전에 왔던 그 소리다.

뭐야?”
좀 전에 신호를 보냈던 누군가인 모양입니다. 답신이 없어 다시 신호를 보낸 듯합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말하기 단추를 누르십시오.”
말하기 단추? 그게 뭔데?”
지금 내게 하듯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누르는 단추입니다.”

그게 어디 있는데?”
좀 전에 눌렀던 단추 옆에 있는 파란색 단추입니다.”

이거야?”

아닙니다.”
단추가 너무 많아. 잘 모르겠어.”

아니라는 자료의 말에 한껏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는다. 목소리도 시들하다.

파란색이 어떤 것인지 기억이 안 나십니까? 잠들기 전엔 다 알고 있었던 것들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 한데 생각이 나질 않아.”
기억이 아직 다 깨어나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말은 하고 있잖아. 그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뭐고, 기억은 뭐야?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뫼는 자료의 말이 다 와 닿지 않는다.
말은 깨어나는 순간부터 할 수 있도록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은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야만 합니다. 그 기억은 한꺼번에 깨어나는 게 아닙니다. 아마 서서히 깨어날 겁니다. 그때까진 이런 일을 거듭 되풀이하며 겪게 될 겁니다.”

그래? 그럼 깨어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겠네? 몰라도 어리둥절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 그렇습니다.”

알았어. 그럼 이거야?”

잠시 불안했던 마음이 깔끔하게 비워진다.

. 그게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쓰는 단추입니다. 그 색깔이 파란색입니다.”

그렇구나. 이게 파란색이구나? 알았어. 기억해둘게. 한데 이 기억도 기억창고로 가서 잠들면 어쩌지?”

ㅎㅎ.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이 지금부터 익히는 것들은 늑장을 부리기는 할지언정 기억창고로 다시 돌아가 잠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늑장을 부린다고? ?”

당신의 관심권에서 어느 정도 가깝게 있느냐에 따라 즉시 떠오르기도 하고 더디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건 당신의 관심에 달려있습니다.”

그렇구나. 이제 이 단추를 누르면 되는 거지?”
.”

뫼는 단추에 손가락을 댄다. 몸이 가녀리게 떨린다. 가슴도 두근거린다.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것이 7987년 만이다. 잠들어 있어 잠깐이었던 거 같은데 몸은 그 긴 시간을 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곤 그 긴 시간 동안 아득함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양이다.

그는 단추를 힘껏 누른다. 처음 듣는 소리가 그의 귀에도 들려온다.

이 소린 뭐야?”
소리를 들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래? 이제 기다리면 되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