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지금 나이는 53세....
십년전에 내가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할때 인연이 되어 만나서 내가 이일을 그만둘 즈음에
그녀도 호프집을 오픈했다.참으로 쉽지않은 의리로 나랑 쭈욱 생활을 했었다.때론 언니처럼...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웨딩드레스는 입었지만 채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마감했단다.
혼인신고를 할 틈도 없이 츄레라 운전기사였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이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단다.
그녀의 자라온 가정조차 기구하다고 해야했다.
위로는 오빠,언니,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있는 4남매의 가정이며,그녀가 열살즈음 엄마는 아버지의
지나친 여자문제로 다툼이 잦았고,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편지 한장없이 가출을 해버렸다.
그 후로 언니가 거의 살림을 도맡아야했다.동생 보살핌은 그녀 몫이였고,
그녀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새엄마란 사람들이 일곱명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정작 병들고 자리에 눕게되자 아버지의 병간호는 그녀의 몫이였다.
목수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성실하지 못했고, 늘 술을 드시며 자포자기한 듯한 삶을 살고 계셨다.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였다.
자녀들의 안위 여부는 상관없이 비가와서 쉬고 눈이 와서 쉬고 ,몸이 피곤하다며 쉬고,
그렇게 쉬는 날은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잠들어 있던 그녀의 남매들을 다 깨워선 집을 나간
엄마의 험담으로 날을 꼬박 지새우기 일쑤고,한달을 놓고보면 일하시러 가는날은 채 일주일이
고작이였다.언니는 일찍 변변치 못하고,찢어지게 가난한 형부를 만나 결혼이란 명분으로
집에서 벗어났고,오빠는 일찌기 부터 학업은 포기한채 돈을 벌겠다는 명분으로 중국집등을
전전하며 배달일을 했고,그녀역시도 등록금을 제때에 주지않아 교무실앞에서 무릎을 끓고
있어야하는 수치심이 싫어서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고,그의 남동생 역시도 보고 배운것이
그런것들 뿐이니까 중학교도 자퇴하고선 중국집 배달일을 했다.
그런상황들이 이어짐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제재도 없었고,강건너 불구경하듯 그런가보다했다.
그녀는 그나마 집에서 가사일을 돌보며 아버지 수발을 들며 그렇게 무의미한 생활들로
아까운 청춘을 썩히고 있던중에 그녀의 아버지가 일하시는 건설현장엘 잠깐 들렸다가
남편을 만났고,그는 그 이후로 아버지한테 끈질기게 그녀를 주십사 했고,그녀 역시도 그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호감은 아니더라도 그리 밉고 싫지 않은 느낌의 남편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현실에서의 도피처의 선택이였을 수도...
그러나 결혼의 단꿈을 꿔보기도 전에 그는 그녀 혼자만을 남겨둔채 그렇게
아별의 예고편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이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러자 시댁 식구라는 사람들이 그녀가 살던곳을 정리해버리며 그녀를 쫓아냈다.
그녀는 다시금 옷가방만 하나 딸랑 들고서 다시금 그 지긋지긋 했던 친정엘 돌아왔다.
그녀는 처음으로 돈을 벌어야만 이곳에서의 탈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집 근처에 봉제 공장에서 잡일을 했었고,그렇게 사회에 눈을 뜨다보니
식당 써빙부터 닥치는데로 일을 해서 한푼두푼 모아서 시작한것이 조그마한 소주방...
방이 하나 딸려있는...그렇게 그녀는 독립을 했고,남동생도 월셋방을 얻어 독립을 했다.
오빠는 아버지를 꼭 빼닮아 제일 먼저 돈을 벌겠다며 나가서는 모아둔돈도 한푼없이
제 몸하나 눕힐 방한칸이 없어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매일같이 술에 번돈을 허비했다.
그러니 좋아할 주인이 어디있으랴~직장도 한달을 못채우고 쫓겨나기 바빴고 구하기도 잘했다.
그러던중 남동생도 장가를 갔다.
그런데, 남동생은 착하다고 했지만, 그녀가 보기엔 약간은 2%로가 부족해 보이는듯한 올케.
그러나 둘이 마음 맞춰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고,또 동생도 열심히 일했고,
연년생으로 아들도 둘이나 낳고,동생은 참으로 성실히 일을 했다.
아버지한테 질렸다며 술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오히려 오빠보다도 든든한 동생이였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살던 그 동생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런 동생이 이제겨우 세살,두살의 아들을 둔 동생이 배달을 나갔다가 무슨이유인지 오토바이로
멀쩡히 서 있는 전봇대를 들이박아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말았다.
청천벽력이였다.
그녀는 궁리 끝에 올케와 조카들을 데려와 방 두칸짜리를 얻어 그녀가 조카들의 분유값이며
생활비를 감당해야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버지 살던집 보증금 빼서 장례식 치르고 나니 조의금까지 합해서 30만원 남더란다.
그렇게 살기를 여러달....그녀는 아이들 울음소리에 깊은 잠을 못자서 가끔은 가게에서 자고
낮에 들르기도 했다. 때론 오빠가 큰아빠랍시고 과자 부스러기들을 사들고 오는 날도 그러했다.
그날도 가게에서 잠자고 부식들을 사들고 집으로 갔는데 아이들만 방안에 둘이 앉아놀고 있더란다.
그래서 엄마는? 하고 물었더니 "엄마 지금 큰아빠랑 목욕해요!" 하더란다.
그녀는 멍해지는 마음에 그대로 그자리를 벗어났단다.뭐라고?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몇일을 고민하다 그녀 혼자 내린 결정은 이러했다.
어차피 젊은 올케가 재혼 안한다는 보장도 없고,또 새아빠라는 사람한테 조카들을 둘이나
맡긴다는것도 생각하기도 싫고,오빠 역시도 장가는 가야 될텐데...
그녀만 묵인하면 세상에선 그녀를 나무랄지 모르겠지만 오빠도 맘잡고,조카들이니 구박할일 없고,
오히려 잘된(?)일이 아닌가라는 결론..그녀는 그날일은 모르는척 했다.
오빠도 술을 안먹고 성실해 진것 같았다.
그녀는 그녀 판단이 옳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기를 채 일년도 되지않아 올케가 영문없이 가출을 해버렸다.
오빠는 또 다시 술을 퍼 먹기 시작했고,엄마를 찾아 우는 아이들을 하나는 업고,
한명은 손잡고 해서 가게방에다 조카들을 두고 우유먹여가며 장사해가면서,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곳을 알아보니 부산안창마을이라는 곳에 천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을 알게 되었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조카둘을 그 곳에다 맡겼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한달에 한두번씩 찾아가 보았다.
너무나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어 어느덧 고3,고2의 장년들이 되어서 오히려 이제는 고모인 그녀의
안부를 되묻는다.감사한 일이다.
빗나가지 않고 사춘기시절도 말썽없이 잘 견뎌준...그녀에겐 아들들이다.
오빠는 그일 이후에 알콜중독자가 되었고,지금은 간 경화로 치료중이다.
그녀는 오빠의 치료비와 조카들의 대학등록금을 염려하여 이 길에 들어섯다.
세상엔 무책임한 부모들도 무척이나 많다.
낳아주었다고 다 부모는 아니며,나이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님을....
그에 비하면 그녀는 바른 길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능력 한계선에서 얼마나 책임감을 다하며 살고 있나!
누가 이 여인에게 직업의 귀천을 물으며 돌팔매질을 할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