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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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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직 보도방 실장이였다.


BY 조 양희 2014-11-28

눈을 뜨자말자 내가 제일 먼저 하는일은 밤새 꺼져있던 전화기를

 

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캐치콜로 딩동딩동 전화기가 바쁘다.

 

입가에 번져지는 흐뭇한 미소...

 

광고 효과를 보는것이다.

 

기다리던 문자 한통이 눈에 들어왔다.

 

{광고 보고 문의하는데요.초보자도 가능한가요?}

 

그렇게 영희씨와 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녀 나이 42세.십년전에....

 

그녀는 고등학교1학년짜리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는 싱글맘.

 

그녀와 처음 마주앉았을때 나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랬었다.

 

너무나 세련되고 화려해보이며 귀티까지 줄줄 흘러나왔다.

 

역시나 그녀는 대연동에 있는 ㄱ대 피아노과를 나온 인테리였다.

 

캠퍼스커플로 열렬한 사랑을 했었고 결혼도하고 딸아이도 하나 낳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딸아이가 다섯살 되던해에 파경에 이르렀다.

 

남편의 술주정과 무분별한 외박과 외도로 인하여...

 

그녀는 이혼후 친정의 도움을 받아 아이랑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간혹 피아노 레슨도 하고 피아노 빠 같은데서 연주도 해주며 그렇게 살아가던중

 

아이는 점점 커가고 또 뛰어나게 공부도 잘하고 의대를 목표로 삼고 있는 딸아이의

 

뒷바라지가 염려스러웠다. 이 상태로는 아이의 의대등록금은 커녕 뒷바라지는

 

엄두도 못내고 있던중에 알바로 일하는 피아노빠에서 손님이 원하여 노래방도우미를

 

불러주는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녀들의 수입을 듣고서 몇날몇일을 고민하다가 문의를

 

하게된것이란다.수입만을 생각하며....

 

일의 설명을 대충 듣고서는 많이 망설이는 눈치였다,

 

나 역시도 이런사람이 그런일을 해 낼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면접중에 출근시간이 되었고 하나둘씩 출근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녀의 눈빛이

 

흔들림을 느꼈다.나는 고삐를 당겼다.

 

"일단 우리식구랑 일을 한번해보시고 결정하셔도 되요.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직접 한번 부딪혀보세요."

 

"......네에~"

 

나는 바로 콜을 잡았고 기존에 일하던 식구와 통성명을 시키고 간단한 룰을 알려준뒤

 

그녀를 암흑으로 내몰았다.

 

두시간이 지났을 즈음 그녀들의 일은 끝났고 영희씨는 차에 앉더니

 

"할만하시던가요?"

 

나의 물음에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다른사람들의 콜을 받아 넣어주면서 차를 몰아 송정 바닷가로 달려갔다.

 

길커피를 두잔 빼서 한잔은 차에 앉아있는 영희씨께 권하고 음악을 힘껏 틀어주며

 

목놓아 실컷 우시라며 차문을 닫아주며 나는 바닷가로 향했다.

 

내겐 낯설지 않은 이틀에 한번 꼴은 일어나는 거의 일상적인 일들이였다.

 

나는 백사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담배를 한모금 피워 물었다.

 

십분쯤이나 지났을까? 그녀는 차에서 내려 나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실장님 저두 담배하나만 주세요."

 

"아..예.영희씨도 담배 피시나요?"

 

"즐겨 피지는 않지만 가끔 술한잔씩 하면 피워보긴했어요."

 

영희씨는 담배를 아주 찐하게 빨아들이며 한숨과도 섞어서 길게 내뱉았다.

 

"돈벌기 쉽지않죠? 남들은 쉽게 생각하는데 쉬운일이 아니예요.이 일을 하실려면

 

집에서 나올때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나오셔야되요.자존심은 당근이구요"

 

"그러게요.그냥 옆에서 술이나 따라주면 되는줄 알았어요"

 

"ㅎㅎㅎ다들 그리 쉽게들 생각하고 옵니다.각오를 하셔야 돈을 벌어요."

 

"아! 좀 살것 같네요.그동안의 설움까지 한꺼번에 다 토해내고 나니 속은 좀 후련하네요."

 

"다행입니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고 집에 돌아가셔서 잘 판단하고 결정하세요."

 

"아뇨.저 한방 더 해볼래요!"

 

"괜찮으세요?"

 

"한번만 더 해볼께요."

 

그렇게 그녀는 밤에 피는 야화(?) 생활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후회와 갈등을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고 임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선....

 

다들 그렇게 시작하고 물들어져간다.

 

나는 그런 여인들을 내세워 기생충처럼 그녀들의 시간비에서 오다비란 명분으로

 

돈을 벌어먹고 살고 있었다.

 

두시간만 하고서도 울고불고 대성통곡을 하던 그녀는 힙만 만져도 손님이랑

 

시비가 붙고 업주한테 항의전화를 받게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도 서서히 타락의길로 접어들었고 돈의 노예가 되어 어느순간부터

 

즐기기라도하듯 그렇게 변해 있었다. 

 

허나.목표는 분명했다.명분이라고 해야옳을듯...

 

딸아이를 꼭 뒷바라지해서 우뚝 세우겠다는...

 

그렇게 그녀는  어느덧 십년 가까운 세월을

 

도우미란 훈장을 가슴 한켠에 달고서도 장하게도 딸아이를 서울 ㄱ대의 의대를 딸아이를

 

밉학시켰고 졸업까지 시키고선 딸아이의 인턴 생활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지금은 딸아이가

 

있는 서울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가끔씩 통화를 한다.

 

아주 일상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여전히 호칭은 실장님! 영희씨!라는

 

상징적인 애칭을 부르면서....

 

어느덧 그녀는 50대 초반의 중년을 훌쩍 넘긴 아주머니다.

 

때가되면 서로 만나서 밥이나 먹으면서 옛얘기나 나누자며....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걸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린 서로가 만나서 굳이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음을....

 

그야말로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쓸줄아는 나를 거쳐간 여인중에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