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깜깜하고 아무도 없었다. 동생은 아무말없이 집을 치우고
조금지나자 막내가 죽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친정에 가자고 하는데 차마 갈수 없는 경이는 괜찮다고 하고 혼자 누웠다.
그리고 새벽에 남편이 들어왔다.
술냄새, 담배냄새...
밤새 뒤척이다.
경이는 결심해본다.
그래 함께 사는 이상 하는데 까지 해보자 하고..
그리고 다음날 부터 힘든몸을 일으켜 밥을 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일찍 들어올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왔다.
집에서 가정주부가 된다면 더 나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집에서 쉬는 걸 알게 된 시부모님은 아침에 남편의 출근과 동시에 시댁에 오기를 원했다.
열심히 뛰어갔다.. 걸어서 5분거리였으니까..
시댁일 하고 점심하고 시부모님이 잠깐 외출한다고 하면 기꺼이 운전기사가 되어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
차에 기름한번, 같이 밥먹자는 소리도 없다.
정작 남편인 범이 조차 반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벌이를 원하는 것이다..
말그대로 슈퍼인을 원하는 것이다.
다시금 학원의 강사로 취업했다.
그런데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고민중이다.
불임치료를 받기 시작하자
경제적으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남편을 결혼과 동시에 생활비 50만원이 전부 였고
다른 어떤 것도 해주지 않았다.
벌어서 사용했는데
불임비용이 보기보다 많이 들었다.(정부지원전이기에...)
평범한 주사도 다른사람들보다 적게 2배에서 6배정도차이
안되겠다 싶어 학원을 그만두고 결혼전 모아돈과 친정의 도움을 조금 받아 학원을 차렸다.
동생이 도와주러 왔고
말그대로 가족이 운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고
집도 정리했다.
남편에게는 작은 집이라도 사자고 이야기하고 전세를 뺏다.
그리고는 처녀때 장만한 작은 아파트로 들어갔다.
결혼하고 얼마안되어 집을 샀다는 말에 시부모님은 대견하다는 듯 보러 왔고
일은 여러모로 겹치고 힘든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시작했다.
남편과의 본격적인 가정만들기
그리고 아이 만들기...
이것이 끝도 없는 전쟁이 될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남편의 씀씀이가 늘고 있다.
학원은 IMF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인원이 빠져나갔다.
그러다 나라의 정책이 이공계열등을 선호하자
순간 학원은 급속적으로 인원이 들었다.
동생과 나는 수업시간등을 늘리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고.
넘쳐나는 인원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사업이 어려웠던 제부가 정리하고 쉬는 동안 도와달라고 하여
차량등을 맡으며 함께 했다.
병원에서 오라는 날에 병원에 열심히 다녔지만 남편이나 시댁의 협조는 없었다.
남편의 검사도 받지 않고, 문제는 너다라는 묵묵한 시위에 답답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 학원은 잘되어
조금 더 큰 아파트를 계약했다. 이제는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IMF는 끔찍했다.
남편이 퇴근후 술과 담배등을 좋아하고 심지어 포커나, 화투등을 즐겨하기에 많은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직원들끼리, 서로 맞보증등을 해가며 은행권에서 대출등을 해가며 한모양이다.
압류, 채권등 낯설은 경고및 독촉장들이 날아들고
순간 앞이 캄캄한 경이는 시댁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니
한마디로 자른다.
결혼해 분가했으면 니들이 알아서 하는 거다.
하며 단칼에 잘랐다.
모아둔 저축깨고, 대출 받고 등등해서 막아나갔다.
그러나 어디에 그런것이 숨어 있는지 하나둘 나오는 것들..
작게는 500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그렇게 순식간에 불거진것이 2억...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결국 있는 카드 없는 카드 만들어 현금서비스에 카드론을 받아 막아냈다.
안되겠다. 싶었다.
친정부모님에게 이야기 하자.
아버지는 두말없이 퇴직금을 돌려 주셨다.
비싼 이자부터 처리하고
아파트를 전세를 놓았다.
다행이 전세는 금방나갔고 경이는 학원의 근처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경이가 살기위해 다시 시작했다.
빚이 있기에 밤낮으로 뛰어야 했기에 당연히 시댁일은 소홀해졌다.
아이갖는 것도 잠시 접어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쌀쌀 맞았다.
처음으로 이혼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