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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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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의 전설


BY 왕눈이 2013-07-11

넓은 남해바다 용궁마을에는 세상에 온갖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전 반짝이 무대의상을 맞춰입고 용궁카바레 입구에서서 '원빈'이란 이름표를 달고 실실 웃는 날씬한 갈치씨와 

손님이 먹다 남은 맥주를 몰래 마시다가 술배가 뽈록 나온 웨이터 복군, 그리고 요염한 핑크빛 스팡클이 빛나는

무대의상을 갈아입는 미스 도미를 몰래 지켜보다가 눈이 돌아간 밴드마스터 미스터 광어씨.

매일 술을 말로 마셔도 끄덕없는 고래아저씨와 집구석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성질에 못이겨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고등어 아줌마.

 

매일 매일 용궁마을은 조용할 적이 없습니다.

어초1마을에 사는 자라아줌마가 남편몰래 바람을 피다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한참동안 못 일어나서

남편에게 들킨뻔했다는 이야기며,

힘좋기로 유명했던 문어아저씨가 오징어아줌마집에 밤마다 드나들다가 낳았다는 낙지군은 과연 누구의 아이인지.

용궁마을 사랑방에 모인 마을 고기들은 할 일없이 입방아를 찢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이런 마을고기들을 조용히 꾸짖는 삼치 할아버지와 우럭 할머니도 있었지만

깨소금처럼 고소한 남의 얘기를 멈출 용궁마을 고기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용궁마을에 남루한 행색을 한 멸치군이 새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멸치군은 세상을 떠도는 가족들과 남해를 헤매다가 우연히 용궁마을에 터를 잡았습니다.

텃세가 심했던 용궁마을에 들어온 멸치군은 바위틈에 낀 이끼를 청소하거나 한바탕 해일이 몰려와

부서진 집들을 고치는 재주가 용해서 어느 새 용궁마을 고기들은 멸치군에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온순하고 착했던 멸치군에게 수리비를 제대로 주는 마을고기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멸치군의 순박함이나 재능이 좋아서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된 마을 고기들도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져 먼 용궁마을로 온 멸치군은 이런 형, 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주었습니다.

무너진 집도 고쳐주고 멀리서 손님들이 오면 잔 심부름도 해주었습니다.

 

세월에 많이 흘렀지만 욕심없던 멸치군은 여전히 가난했고 가끔 모아놓은 멸치군의 돈을 노리는

잔챙이들도 스쳐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이 멸치군에게 애인이 생겼습니다.

저 윗녘 어디에서 왔다는 삼식이언니는 한눈에 멸치군에게 반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은빛 비늘옷도 새로 사주고 제법 번듯한 소라집도 마련했습니다.

 

살림을 차린 멸치군과 삼식언니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이웃의 고기들이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짝과 헤어져 혼자 살던 홀아비 밴댕이 들이 그들이었습니다.

삼식언니가 내려오기전에는 멸치군을 불러내 술도 마시고

이것 저것 잔 심부름도 시키던 그들은 어엿한 가장이 되어버린 멸치군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멸치군의 곁에는 덩치도 커다랗고 한 눈에도 만만해 보이지 않는 삼식언니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는 어느 날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정체불명의 삼식언니가 자신보다 보잘 것없는 멸치군에게 반해 용궁마을에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중 나이가 조금 더 먹은 밴댕이가 물었습니다.

"어이 동생, 도대체 저 언니가 왜 멸치와 함께 살 생각을 했을까?"

"글쎄 워낙 힘이 좋았잖어...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것 안 봤소?"

"흠 내가 들은 얘긴디..저 멸치군이 온 동네에서는 멸치를 최고의 고기로 친다더만."

"아하 그래서 그걸 알아본 모양이구먼. 아니 그래도 우리가 멸치군보다 못할게 뭐여.

그래도 용궁대학교물까지 먹었지, 인물이 빠져, 집안이 빠져."

"그러게...아무래도 멸치는 요긴하게 쓰이잖어. 국물내지 볶아먹지."

"그람 우리도 그 멸치군처럼 하면 될거 아니겄어."

"멸치군처럼 한다니 어쩌케?"

"우리도 멸치놈처럼 꼭 필요한 고기가 되보는 거여, 일단 마을밖에 나가보더라고."

형 밴댕이와 동생 밴댕이는 햇살이 화창한 어느 날,

멸치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바다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왁자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멸치들을 잡아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고 이제 우리는 이 멸치덕에 시름을 잊었네. 얼마나 고마운 멸치인가 모르겄네."

그 말을 들은 두 밴댕이들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퍼올리고 있는 멸치틈에 얼른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멸치를 고르던 사람들은 멸치사이에 낀 밴댕이를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아이고 속도 좁은 밴댕이가 어치께 여기 들었데여. 버리기는 아깝고."

밴댕이는 멸치군을 따라하다가 디포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