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왜? 그건 알아서 뭐하게...”
“궁금하죠.....어른들이 그러잖아요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루밤....?”
“네에^^”
갑자기 꼬마 아가씨의 같잖은 말에 어이가 없다
“그건 그렇고 이름이 뭐야?”
“거봐요. 아저씨도 내 이름이 궁금하자나요^^”
그걱 그 애 말이 맞다. 이름을 알고 싶다. 그리고 내력도 알고 싶은게 진심이다.
솜털도 마르지 않은 것이 어찌 험한 세상을 겁도 없이 덤비는가 말이다
난 결국 꼬마 아가씨의 유혹에 빠진 것일까?
그녀의 갸녀린 장단지에 눈길이 가는걸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도 모르는 산중으로 마구 데려 가고 싶다? 내 이름을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아저씨, 부담되세요^^?”
“무슨 부담?”
“아저씨 얼굴에 써 있어요^^”
“뭐라고?”
녀가 내 맘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아저씨, 저엉 부담 되시면 저 여기서 내려 주세요”
“뭐라고.....정말이지?”
“아저씨도^^ 삐지시기는ㅎㅎㅎ”
“내가 삐져? 뭘 삐져....?”
“아저씨, 외로우면서 괜히 그러지 마요^^”
놀림을 당하는 것인가. 얼굴이 화끈거린다. 음탕한 상상을 들켰던 유년의 자위몽처럼 쩔쩔매는 내 꼴이 우습지 않은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성인이고 어른이다. 청소년을 선도하고 보호하고 안내해야할 나이이다.
“잔소리 말고 오늘 잠재워 줄테니까 내일 아침에 깨자마자 가 알았지”
“깨자마자요...왜요?”
“나도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출근요...아저씨도 출근해요?”
갈수록 가관이다. 내가 그럼 백수로 보였다는 말인가
“아니, 내가 백수로 보여?”
“아뇨....백수는 아니지만 일찍 출근하시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지?”
“저만의 필이예요”
“필?”
“네에, 보면 알죠”
꿀밤이라도 한번 쥐어 박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맘의 깊은 바닥에는 이 꼬마 아가씨에 대한 경계가 풀리는게 확실하다.
“아직 멀었어요?”
“다 왔어...”
갑천을 따라가다 유천동 못미쳐서 좌회전
겨울 만난 갈대숲이 외로워 울고
흩날리는 바람이 저녁 운동을 나온 인적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난 예고도 없이 나타난 애린 소녀를 태우고 아파트로 들어 서고 있었다
아무도 불 밝혀주는 이 없었던 나의 아파트
홀로 외로워 터벅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탈때면
왜 내가 이렇게 혼자사는 신세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운명에게 불평을 해보던 세월의 가끔
“아저씨, 여기 가게 어딨어요?”
차문을 열고 내리며 소녀가 내게 묻는다
“가게는 왜?”
“살게 있어서요”
“뭔데.....?”
“그건 몰르셔도 돼요”
“저어기....”
난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리얼 슈퍼를 가르쳐 주었다.
“아~ 아저씨 몇동 몇호죠?”
“몇동 몇호?”
“네에...제가 알아야 슈퍼갔다 들어갈거 아네요^^”
점점.....혹시 남친들 데리고 들어 닥치는 것 아냐?????
갑자기 겁이 난다. 그렇지
“여기 있을께 갔다와”
“그러실래요^^”
소녀인지 꼬마 여우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를 쬐그만 계집애가 나를 서 있게하다니.....
슈퍼로 걸어가는 녀가 보이지 않을때쯤 나는 살금살금 녀의 뒤를 미행했다.
혹시, 패거리들을 끌고 나를 몰아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녀는 슈퍼로 들어 갔다. 난 은폐물을 앞에 두고 슈퍼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별일이다. 정말 내가 왜 이러지.....그때 차를 세우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그냥 지나쳤으면 되잖아...잘못 엮인다면.....꽁무니 뺄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소녀가 나온다. 검은 봉지를 들고 있다.
기우?.......
뭘까?
난 시침을 뗴고 아파트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아저씨^^”
소녀가 하얗게 웃으며 내게로 달려 온다. 누가 보면 딸이라고 하겠지......아니면 동생...조카...
“가요....”
“...............”
요즘 아파트들은 대게 두어번의 비밀번호를 눌러 주어야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아파트도 그렇다. 비밀번호를 빠르게 누른다. 혹시 소녀에게 노출될까봐 그런지도 몰랐다
내 집 현관 자동 전등이 켜지자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
“오오!! 집 좋으네요^^”
“좋아?”
“네에.....이런 집에 자보는거 처음이예요”
“자 보는거 처음이라고..?”
“네, 더구다나 아저씨 같은분하고 자보는거요^^”
자보는거란 말이 영 마음에 테클로 걸려온다.
꼬마 아가씨가 하는말이 다 내게는 민감한 사안이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걸까...
난 얼른 텔레비전을 틀었다. 무언가 소란스러워야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였으리라.
“아저씨....이거....”
“뭐야?”
그녀가 사온 것은 술과 안주
자세히 설명하면 맥주와 불에 구운 오징어포 등등
난 소녀를 빤히 째려 봤다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 안다는 듯
“왜요? 아저씨...”
“술먹게...?”
“맥준데요 뭐....다 아시면서.....”
다 아시면서라는 말이 무슨뜻?
난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 브란인드를 올리면서 말했다. 아주 의연하게
“허튼수작 하지마......배고프면 음식 시켜먹고 바로 자 알았지”
“바로 자요....좀 놀다 자면 안되요?”
“놀다 자긴....나 바쁘니까.....”
“그렇게 바쁘세요......알았어요”
그녀가 집을 둘러보면서 건성건성 내말에 대답을 던진다
“갈아 입을 옷 없지?”
“네에? 아아 없어요. 괜찮아요. 그냥 자면 되니까요......”
녀가 주방쪽을 살핀다.
“밥 해드릴까요? 아저씨...”
“밥.....밥을 언제 해....정 배고프면 시켜주고......”
“아네요.....제가 밥 하면 되요”
정말 밥을 하려나 보다. 쌀통도 없는데.....
“쌀도 없어.....그냥 시켜”
“그럼 오늘은 과일이나 먹고 자죠 뭐^^과일은 있죠”
소녀가 냉장고를 벌써 열고 있다. 아마도 아줌마가 며칠전 사다놓은게 가득 있으리라
냉장고 안을 살피던 소녀는 금새 과일을 찾아낸다. 그리고 제집처럼 서랍을 열고 칼을 꺼내고 접시도 준비하고 참말로 익숙하다
허기야 아줌마가 잘 정리해 둔것이니 찾기 쉽겠지....
“앉으세요 아저씨.....과일 많네요^^ 맛있겠다 ㅎㅎㅎ”
아저씨인 나와 소녀가 마주 앉았다.
“술 한잔 하실거죠?”
맥주잔을 찾아내고 녀가 사온 맥주와 안주를 벌려 내놓으면서 소녀는 마냥 즐거워 보인다
“아저씨, 나 여기서 살으면 안되요?”
“왜 살아?”
“그냥요....아저씨도 외로울 것 같은데......”
“뭐야? 참 말이 안나오네...”
화난 내 표정을 희석이라도 하려는듯 소녀가 얼른 맥주를 따른다. 거품도 하나 없게 능숙한 솜씨(?)로
“드세요...”
받쳐 올리는 소녀의 긴 손가락.
갑자기 가녀린 손이 내 시선을 얼게한다.
내 시선이 소녀를 훑어 내려온다.
속살이 전등에 비치어지니 내 곤한 심장의 피가 끓는것 같다
지금껏 내가 보아온 여자의 살갗중 가장 곱고 청아하다(?)~
술먹으면 실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감정이 이성을 먹어치울 것 같았다.
이러면 안되지.....
그러나 난 다른 빈잔에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소녀에게 먹일 술이었다.
하얀 거품
그리고 그 잔을 받아드는 소녀의 근심없는 표정
거미줄에 곧 걸릴 나빌레라
하얀 피부가 내 격정을 자꾸 부추기고 알콜은 내 목구멍으로 넘어 간다
삼년 가믐에 단비를 줄 구름 한점인가....
감질나는 소녀의 속살
오랜 독신을 고집해온 나를 자꾸 나락으로 끌어 내리는데....
이러다 정말.......일(?) 내겠네....
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를 먹어 치우려는 음욕을 향해 거세게 항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밤 내게로 온 악마(?)의 덫을 탈출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다.
맥주 거품처럼 내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보아
곧 춤을 추려는 것인가...........
어이없지만 밤은 비틀대며 맥주잔에 잠겨 자꾸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