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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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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보내는 방법 1


BY 망팬 2013-03-06

“어디로 갈까? 집에 들어갈래?”
“아네요....누님 얼굴 봤으니까 갈께요”

재범이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밥이라도 먹고가...”
“밥은요.....갈께요”

그의 표정이 너무 딱하다. 이럴때는 어찌해야 되는건가...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에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다니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다독여 주던 그가 아니었던가...

“우리, 그럼 어디가서 얘기나 하자 응?”
“........................”

“그래, 이대로 보내기는 나도 그렇고.....”
“누님, 괜찮아요.....저도 이제 마음 다 정리하고 서운한 것도 없어요. 좀더 도와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알았어...그러니까.....얘기나 좀 하다가 가. 이대로 가면 내가 뭐가 돼.....가자 응”

정말 이대로 재범이와 헤어질 수는 없었다. 자초지종도 알아야하고 무언가 고마운 표시라도 하고 싶다.

“정말....그냥갈거야..?”

재범이의 표정속에 미련이 보인다.
저도 그렇겠지...아무리 마음을 정리했다 하더라도 코흘리게 시절부터
나와 쌓아온 정을 한 순간에 잊을리야....

“어디로 가실래요.......식사라도 하시죠 그럼....”
“그래.....얼른 운전해....”

거리에 네온이 하나씩 둘씩 켜지기 시작하고 동부터미날 근처의 모텔 간판들이 비밀의 방 주인을 부르고 있는데 재범이와 난 이별의 밤을 앞에 두고 충남대학교를 지나 동학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저기서 좀 쉬어갈까?”
“어디요?”

“저기 배미 공원.....”
“아.......거기요.....”

“그래......아직 밥먹을 시간은 좀 이르잖아....”
“네에. 학교 다닐때 누님하고 자주 왔었죠^^”

학창시절에는 이 공원에 자주 왔었다. 재범이와도 함께 왔던 추억이 있다.
동학사로 소풍을 간다거나 하면 들르기도 하고 온천리 외가댁에 다녀오는 길에
재범이와 함께 놀던 기억들

공원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허드러지게 피었다. 차를 세운 우리는 벤치로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공원엔 보안등이 졸고.....

“옛날 생각 나지^^^?”
“네, 나요......누님 그때 정말 미치게 예뻤는데.....”

“미치게.....?”
“예, 지금와서 뭐 숨기겠어요. 사실 제 첫사랑은 누님이었잖아요...”

“그랬어^^ 알것같네 호호호.....남자애들은 누나나 여선생님이 첫사랑이라면서^^^”
“그러문요.....전 사실 누님하고 결혼하겠다고 얼마나 다짐 했다고요....”

술술 진실이 풀려 나오나? 더구다나 이제 언제 만날지 모르는 마당이니 하고 싶은 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뭐가 그리 좋았어^^?”
“그걸 말로 어떻게 해요 흐흐”

“왜 못해.....듣고 싶네....”
“챙피해요^^^ 저 쪽으로 걸어요....올해는 개나리 벚꽃이 함께 폈네요. 그전에는 개나리 피고 나서 벚꽃이 피었었는데......뭔가 기후가 잘못된 것 같아요.....”

“하기야, 매연이 심해서 그런지 기후가 제멋대로잖아...”
“그래요....사람도 그렇고 세상도 그런 것 같아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차가 매일 매연을 뿜어대니 지구라고 온전할라고.....미치지!!!

“누님, 저 이제 떠나면 누님 아주 잊어질라나 몰라요^^”
“왜, 내가 지긋지긋 해졌나보네^^?”

“네^^ 제 가슴에 삼십년 눌러 앉으셨으면 됐죠,,,,,저도 맘 독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어쩌지....”

난 왜 남자들에게 가시가 되는걸까?
나의 팔자라는 책자속에 무엇이 잘못 수록되어 있다는 말인가?

“누님, 저기 포장마차 하나 있네요. 바람도 부는데 소주 한잔 할래요?”
“술? 운전은 어쩌고....”

“거기까지 안가면 어때요. 여기서 산책하고 저기 홍인장 옆에 미란다로 가면 어때요?”
“그럴까....”

동학사 안에 향수라는 한정식 집이 있는데 우린 거길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꼭 거기까지 가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금방 전을 편 포장마차의 여자는 애기를 하나 들쳐 엎고 있다.

“소주 한병 주세요”
“안주는요?”

“아무거나 주세요”
“쭈꾸미 드릴까요?”

소주 잔을 채운다. 그리고 잔을 부딪치고 목에다 털어 넣는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 지만 오늘은 먹고 싶다.

경찰서에서 수모(?)를 당했는데 설상가상 재범이가 떠난다니.....
괜히 을씨년 스럽다.

더구다나 아무 관계는 아니지만 유창수 그가 죽었고 부검중이라는걸 생각하면
어쩌다 누명을 쓸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나를 짓누른다

“한잔 하세요 쭈욱!!”
“알았어......오늘은 먹어야지.....재범씨와 마지막 밤을 위하여!!!!!”

몇잔 연거푸 잔을 치웠더니 얼굴이 붉어지고 숨도 고르지 않다.
재범이가 나를 은근히 내려 보는데 공연히 내 가슴팍이 부끄럽다.

“저어기...나 한가지 물어볼게 ^^^”
“뭐에요 누님!”

혀가 조금 말린걸까.....애교스럽고 싶다.
재범이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동생은 나 어디가 그렇게 좋아?
“네? 어디요....”

“그래, 좋은데가 있을거 아냐?‘
“별걸 다 물어 보시네...짖궂으셔요 하하하”

“그래도 말해봐....떠나면 못듣잖아...아쉬울 것 같애 호호호”
“말씀드려도 돼요?”

“그럼....마지막 고백인데 들어는 줘야지.....”
“알았어요.....대신 한잔 더 마시고요...그래야 용기가 날것 같아요...”

우린 소주를 한 병 더 불렀다. 그리고 새 병의 술을 목에다 다 부었다.
노을이 지는것인지....노을 빛이 좋다. 그리고 재범이 얼굴이 멋지다. 늠름해 보인다.

<떠나 보내는 내 마음이 아쉬워하고 있구나....!!!>

꽃잎 하나가 날아와 떨어진다.
하얀 벚꽃의 해바라기 씨앗같은 꽃술이 바닥으로 내려 앉는다.

하나씩 둘씩 공원등이 더 켜지고 포장마차에 손님이 하나씩 둘씩 불어 나는데
우린 한병의 소주를 더 비우고 서쪽 초가 모양의 쉼터가 있는쪽으로 다정한 연인이 되어 꼬옥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