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없었지만 동부경찰서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당 경찰관의 시선이 정말 더럽다 못해 매스껍다
“주소요?”
“대덕구 중리동 348의 2번지...”
“성명”
“김이화”
“주민등록번호는요”
“661104-2382317”
“가족관계는요?”
“딸 하나...”
시시콜콜 다 물어 본다
“유창수씨와는 어떤 관계죠?”
“네? 아무관계도 아닌데.....”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말씀 드릴게 없는데요...”
“아니, 그러면 왜 여기 오셨어요!!”
“.................뭔.......”
완전 죄인 취급이다,
“최종 통화를 한 위치가 당신 집앞이잖아 그리고 전화번호하며.....”
“그게 뭐 어땠는데요.....”
“이 양반이 정말 너무하네.....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정말 딱 한번 만난 것뿐인데......이렇게 궁지에 몰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럼....제가?”
어이가 없다. 말하자면 타살일 경우 혐의자에 내가 오른다는 애기였고 또 의심하고 있는듯하다.
흔히 말하는 치정에 의한 살인이니 뭐 그런 것쯤으로 몰아가려는 걸까
<하아 웃기네....>
내 입이 독백했지만 이건 웃기는 것이 아니고 현실이다
경찰관은 계속 끄나풀이라도 얻고 싶은 모양이다. 별 치사한 내용까지 다 묻는다
“누구의 소개로 알게됐죠?”
“그런걸 다 말해야 돼요?”
“필요한 사항이니까 물어 보죠? 죄가 없으면 솔직히 말해야지 자꾸 숨기면 어렵습니다”
“아저씨!!!!”
난 너무 억울해서 경찰관을 노려 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너무 싸늘하다.
비웃고 있다. 더러운 여자라고 치부하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 돈이라도 받고 몸을 판 여자쯤으로 취급하는
대화 태도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고.....”
“갈께요”
혹시라도 내게 불리할까봐 속내를 감추고 공손히 인사를 하고 경찰서 문을 나오는데 이건 죄짓고 살 일이 아니다.
“별 참~”
차 키를 꽂고 시동을 건다.
경찰관 말대로 어찌 되었건 나와 만났던 남자가 죽었다.
그렇다면 나 라는 여자에게 남자의 죽음과 관련된 살이 낀걸까...
아니지....내가 유창수와 무슨 관계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만나 밥먹은거 뿐이데.....
그게 내 팔자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과민반응 보이지마....막말로 내가 잠을 잤어.....돈을 받았어....힘내!!”
혼자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지만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다.
계족산의 벚꽃이 하얗게 절정을 이루었고 신탄진 봄꽃제에 송해 선생이 와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해 갔는데 오정동에 사는 어떤 회사의 젊은이가 꽃보다 아름다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로 우수상을 탓단다.
<노래방에나 갈까...>
마음도 울적하고 난 쟁반노래방 세선이에게로 차를 몰았다.
갤러리아 근방에 있는 세선이의 노래방은 늘 손님이 많은 곳이다.
세선이가 노래방을 낸 후 6개월쯤 지나서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친구야 놀자라는 DVD영화관이 생기고부터
손님이 구름떼처럼 몰려 들어 돈 복있는 여자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남자 편력도 대단한데 이제껏 한번도 남편에게 쥐어 산적도 없고 바람을 피우던지 남자와 즐기던지 흔적없이 잘 지내온 여우라고 할까......
치사하다 내꼴은 이게 뭔가. 누구 말따나 뭐 일이라도 저지렀다면 후회는 없으련만....
아무래도 난 즐기며 살 팔자는 아닌 것 같다
“세선아, 밥좀 사줘”
“네가 왠일이니?”
“그냥......”
“알았어....뭐 먹을래?”
“쐬주 한잔 먹고 싶네....”
“소주? 너 무슨일 있니?”
아직 유창수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같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세선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듯하다 적어도 지금은......
“혼자 살려니까 힘드네......”
“얘, 너 좋아하는 재범이 있잖아 영계고 얼마나 좋아.....뭘 찾아 그냥 적당히 데리고 놀으면 되지, 호호호
그게 무슨 죄니 서로 좋자는 것인데.....호호호호“
< 미친X>
속으로 그렇게 욕은 했지만 그녀의 말이 밉지는 않으니.....
“끊어.....신호 바뀌었어.....금방 갈게.....”
차가 한참 신호따라 가는데 홈플러스 앞 신호에 걸린다. 워낙 쇼핑객이 많아 몇 번 받아야 될 것 같다
지루할 때 난 문자를 열어본다.
문자가 한 30개 정도 되나보다.
딸에게 온 메시지를 읽고 있는데 전화다. 누구?
재범이다.
<받어 말어....>
“여보세요”
“저예요.....”
“응, 어디야?”
“네, 누님 집앞에 왔어요. 안계신 것같아서.....”
“왜?”
“인사나 하려고요....”
“인사?”
“네......저.....이제 누님 못볼 것 같아서요”
못본다. 그렇다면 떠난다는 말인데....
어디로 떠나는걸까? 그리고 왜 갑자기......?
갑자기 내 마음이 허해지나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
“어디 가는데.....사무실은 어쩌고?”
“네, 현범이 한테 주고 저는 가야지요......”
현범이라면 재범이의 동생이다. 하직 인사를 왔다면 이민을 가거나.......
“어쩌지?”
“괜찮아요.....그냥 갈께요. 기회 있으면 전화 드리든지.....멜로 하죠 뭐”
말은 그렇게 해도 날 만나고 싶은 말투가 역력하다.
“오늘 아니면 안돼?”
“네에....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뭐.....”
“아냐....내가 그리로 갈게......”
“그러실래요.....”
난 차를 돌렸다.
재범이라는 남자가 작별인사를 할 모양인데.....어찌 외면하랴
그동안 내가 받은 호의를 헌신짝처럼 버릴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내 가슴에 아쉬움이 몰려왔다.
재범이가 내게 주었던 선물이 생각 났다.
하얀 선물......재범이가 딴에는 못난 나를 아주 깊게 연모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렇지만 그건 안되잖아........머리속으로 수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 간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다 하던 그를 이제 두고 볼 수없다니.......
그래도 든든했는데....마지막 보루처럼....그랬는데........
“다 가라~~”
갑자기 볼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린다
<마지막 인사......무얼 주어야하지......?>.